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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공어 그룹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JEI로 대표되는 에스페란토 그룹.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 인공어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보조 인공어를 만들어오신 그룹.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그룹들.
일본의 인공어 그룹은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JEI로 대표되는 에스페란토 그룹.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 인공어를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보조 인공어를 만들어오신 그룹.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그룹들.
=== 대한민국의 인공어 ===
=== 대한민국의 인공어 ===
일단 대한민국은 역사까지 파고 들어간 에스페란토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인공어의 잎파리 한 줄기는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석주명]] 선생님이나(심지어 석주명 선생은 학계 초록에 에스페란토를 추가하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국어나 역사 수업 듣다가 한 번씩 들어보는 [[KAPF]] 등 한 세대 지식인들과 일반인들이 모두 에스페란토어를 배워보자는 가열찬 움직임에 뛰어들었었다. 심지어 [[동아일보]]가 에스페란토 강좌를 신문에 게제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1940년 일제의 강탈로 인한 조선어, 사상 통제로 인해 에스페란토는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해방 이후 건국과 함께 에스페란토 운동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반공]]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에스페란토는 일정 부분 빨갱이 언어로 자리매김한 데다가,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 운동도 줄어들었다. 다행히 [[1975년]] 파란만장한 시절에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창설되고, 국가 지원 사단법인으로 선정되어 다시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그 국고 지원이 중단되면서 활성화의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다행히 1994년 한국방문의해와 함께 진행된 세계 에스페란토대회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마종태]] 선생이 에스페란토 학술원 회원으로 있고 이중기 선생이 신임 [[UEA]] 이사로 선임되시는 등 에스페란토 계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대한민국은 역사까지 파고 들어간 에스페란토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인공어의 잎파리 한 줄기는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석주명]] 선생님이나(심지어 석주명 선생은 학계 초록에 에스페란토를 추가하기까지 했다!) 고등학교 국어나 역사 수업 듣다가 한 번씩 들어보는 [[KAPF]] 등 한 세대 지식인들과 일반인들이 모두 에스페란토어를 배워보자는 가열찬 움직임에 뛰어들었었다. 심지어 [[동아일보]]가 에스페란토 강좌를 신문에 게제해 주는 <ref>백남규(2006), 에스페란토 강좌,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동아일보의 310703-311110일간 100회 연재분의 정리.</ref>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1940년 일제의 강탈로 인한 조선어, 사상 통제로 인해 에스페란토는 당연히 줄어들게 된다. 해방 이후 건국과 함께 에스페란토 운동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반공]]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에스페란토는 일정 부분 빨갱이 언어로 자리매김한 데다가,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 운동도 줄어들었다. 다행히 [[1975년]] 파란만장한 시절에 (사)[[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창설되고, 국가 지원 사단법인으로 선정되어 다시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그 국고 지원이 중단되면서 활성화의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다행히 1994년 한국방문의해와 함께 진행된 세계 에스페란토대회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마종태]] 선생이 에스페란토 학술원 회원으로 있고 이중기 선생이 신임 [[UEA]] 이사로 선임되시는 등 에스페란토 계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 2001년 [[세종대학교]]의 일련의 언어연구자들이 본격적인 보조 인공어인 [[우니시]]를 만들어 발표하여 잠깐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등 꽃을 피웠으나, 보급운동도 없고 보급당할 사람도 없어 역시나 망해버렸다.
이후 2001년 [[세종대학교]]의 일련의 언어연구자들이 본격적인 보조 인공어인 [[우니시]]를 만들어 발표하여 잠깐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등 꽃을 피웠으나, 보급운동도 없고 보급당할 사람도 없어 역시나 망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