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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본문|에딘버러 글래스고 철도}}
{{본문|에딘버러 글래스고 철도}}
[[에딘버러 글래스고 철도]]로서 [[1842년]] [[2월 2일]] 개통한 이 노선은 스코틀랜드의 최초 [[도시간 철도]]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이후 이 노선은 [[북영국철도]]의 핵심 구성요소가 되었다. 북영국철도는 1923년 [[런던 노스이스턴철도]]에 다른 철도회사와 동일하게 1949년 [[영국철도]]에 흡수통합됐다가 [[영국철도 민영화]]로 인해 [[스콧레일]]로 분할되어 현재에 이른다.
[[에딘버러 글래스고 철도]]로서 [[1842년]] [[2월 2일]] 개통한 이 노선은 스코틀랜드의 최초 [[도시간 철도]]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ref>{{책 인용|성=Robertson|이름=C. J. A.|날짜=1983-03-04|제목=The Origins of the Scottish Railway System: 1722-1844|출판사=John Donald Publishers Ltd|ISBN=0-8597-6088-X|장=3장 2절 ''The essential link: Edinburgh to Glasgow''|쪽=99-120}}</ref>. 이후 이 노선은 [[북영국철도]]의 핵심 구성요소가 되었다<ref>{{책 인용|성=Awdry|이름=Christopher|해=1990|제목=Encyclopaedia of British Railway Companies|출판사=Sparkford: Patrick Stephens Ltd|ISBN=1-8526-0049-7|쪽=128}}
</ref>. 북영국철도는 1923년 [[런던 노스이스턴철도]]에 다른 철도회사와 동일하게 1949년 [[영국철도]]에 흡수통합됐다가 [[영국철도 민영화]]로 인해 [[스콧레일]]로 분할되어 현재에 이른다.


=== 영국철도 이후 ===
=== 영국철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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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영국철도 관계자는 이 구간의 노령화된 철도 차량을 교체하는데 합의하고 [[디젤 전동차]]인 47/4계 12대를 [[영국철도 47계|47/7계]]로 번호를 바꿔 [[영국철도 마크 3|마크 3 객차]]와 함께 도입하기로 하였다. 47/7계는 [[시분할 다중화]] 기술을 통해 [[개방형 표준조종식객차]](DBSO)와 결합해 PP 기능을 그대로 지원했다. 최고속도도 100mph(160㎞/h)로 향상됐다. 또한 이 시기에 [[인터시티]]가 퀸스트리트와 {{역|런던 킹스크로스}}, [[웨스트 카운티]]의 역들을 잇게 되면서, 노선 내에서 [[인터시티 125]]가 사용되게 되었다. 이 당시 열차들은 30분 간격으로 헤이마켓, 폴커크 하이만 정차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첨두시간대에는 비숍브릭스, 렌지, 크로이에도 열차가 정차했다. [[주일]]에는 {{역|폴커크 그래엄스톤}}으로 열차가 우회하기도 했다.
1979년에 영국철도 관계자는 이 구간의 노령화된 철도 차량을 교체하는데 합의하고 [[디젤 전동차]]인 47/4계 12대를 [[영국철도 47계|47/7계]]로 번호를 바꿔 [[영국철도 마크 3|마크 3 객차]]와 함께 도입하기로 하였다. 47/7계는 [[시분할 다중화]] 기술을 통해 [[개방형 표준조종식객차]](DBSO)와 결합해 PP 기능을 그대로 지원했다. 최고속도도 100mph(160㎞/h)로 향상됐다. 또한 이 시기에 [[인터시티]]가 퀸스트리트와 {{역|런던 킹스크로스}}, [[웨스트 카운티]]의 역들을 잇게 되면서, 노선 내에서 [[인터시티 125]]가 사용되게 되었다. 이 당시 열차들은 30분 간격으로 헤이마켓, 폴커크 하이만 정차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첨두시간대에는 비숍브릭스, 렌지, 크로이에도 열차가 정차했다. [[주일]]에는 {{역|폴커크 그래엄스톤}}으로 열차가 우회하기도 했다.


1984년 소의 다리가 철도 대차에 부딪혀 발생한 [[폴몬트 탈선사고]]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PP동차]]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발생하였다.  
1984년 소의 다리가 철도 대차에 부딪혀 발생한 [[폴몬트 탈선사고]]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PP동차]]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발생하였다<ref>{{뉴스 인용|성=Stead|이름=Jean|제목='Push pull' trains to be altered after death crash inquiry / Call for safer trains after derailment in Scotland|뉴스=[[가디언]]|날짜=1985-02-22}}</ref>.  


1999년 [[영국철도 170계|170계]]가 도입되면서 [[그레이트 이스턴본선]]의 전화와 함께 [[개방형 표준조종식객차|DBSO]] 열차를 [[영국철도 158계|158계]] 4량이나 6량 편성으로 교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운송이 지연되고, 그레이트 이스턴본선에 차량을 투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58계가 도입돼 [[파노스선]]으로 차량이 이전되기 전까지 [[영국철도 156계|156계]]가 잠시 사용되었다. 이후 1999년에 [[영국철도 170계|170계]] 차량이 들어오며 158계를 파노스선 등으로 몰아냈지만 여전히 열차 운영상 문제로 156계나 158계, 다른 동력 열차가 투입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1999년 [[영국철도 170계|170계]]가 도입되면서 [[그레이트 이스턴본선]]의 전화와 함께 [[개방형 표준조종식객차|DBSO]] 열차를 [[영국철도 158계|158계]] 4량이나 6량 편성으로 교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운송이 지연되고, 그레이트 이스턴본선에 차량을 투입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58계가 도입돼 [[파노스선]]으로 차량이 이전되기 전까지 [[영국철도 156계|156계]]가 잠시 사용되었다. 이후 1999년에 [[영국철도 170계|170계]] 차량이 들어오며 158계를 파노스선 등으로 몰아냈지만 여전히 열차 운영상 문제로 156계나 158계, 다른 동력 열차가 투입되는 경우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