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팅리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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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 라이트가 1917년에 찍은 첫 사진. 프랜시즈와 ‘요정들’의 사진을 담고 있다.

코팅리 요정, 또는 코팅리 페어리(영어: Cottingley fairies)는 잉글랜드 브래드포드코팅리(Cottingley)에서 엘시 라이트(Elsie Wright, 1901~1988)와 프랜시즈 그리피스(Frances Griffiths, 1907~1986)가 만들어낸 사진이다[1]. 1917년에 첫 두 장의 사진이 공개됐을 때 엘시는 16세였고 프랜시즈는 9세였다. 이 사진의 대부분은 가짜였지만, 기존의 사진조작기법을 사용하지 않아 코난 도일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사진을 실제로 촬영된 것이라고 믿으면서 잉글랜드를 포함한 영국 사회에 한때 큰 이슈가 되었다.

1980년대 엘시와 프랜시즈는 사진이 가짜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프랜시즈는 마지막 사진만큼은 실제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사진과 사진을 찍는데 사용된 카메라들은 브래드포드에 위치한 국립과학미디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17년의 첫 사진 촬영

사건 당시 라이트 가족의 집(X)과 사진 촬영이 있었던 곳들(A-E)의 그림

1917년 여름에 프랜시즈는 어머니와 함께 남아공에서 영국으로 이동해 서 요크셔의 코팅리 마을에 있는 엘시의 어머니, 프랜시즈의 이모인 폴리 라이트(Polly Wright)의 집에 머물게 됐다. 프랜시즈는 엘시와 다락방을 함께 쓰게 됐고, 상당히 친해졌다. 엘시와 프랜시즈는 함께 화단 아래에 있는 개울(beck)에서 놀고는 했는데, 자주 몸과 옷이 젖은 채로 돌아와서 어머니들의 분노를 사게 됐다. 프랜시즈와 엘시는 변명을 위해 벡에 있는 페어리들을 보기 위해 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엘시는 7월의 어느 토요일[2] 그의 아버지애게서 믿쥐(Midg) 카메라와 건판을 빌려갔다[3]. 이들은 개울로 가서 30분 후에 ‘의기양양해’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4]. 엘시의 아버지인 아서(Arthur Wright)는 열정적인 아마추어 사진가였고, 집에 암실을 갖추고 있었다. 사진 건판의 사진을 현상했을 때 그는 네명의 페어리가 춤추고 있는 가운데, 프랜시즈가 전경의 덤불 뒤에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서는 딸의 아티스트적 능력과, 그녀가 가끔씩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사진의 형체가 오려낸 그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출처 필요].

두 달 후에 둘은 다시 카메라를 빌려와서, 엘시가 잔디에 앉아 1피트 정도 되는 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사진을 가져왔다. 아서 라이트는 사진을 현상하고 나서 사진이 ‘장난일 뿐이라는’ 것에 분노하고[4], 두명이 어떻게든 카메라를 조작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로 아서는 그들에게 다시 카메라를 빌려주지 않았다[5]. 그러나 그의 아내 폴리는 사진이 진본일 것이라고 믿었다[4],

1918년 말에, 프랜시즈는 그동안의 삶을 살아온 케이프타운에 살던 친구인 조한나 파빈(Johanna Parvin)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페어리들과 함께한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프랜시즈는 사진 뒤에 ‘너무 재밌어. 난 그들을 아프리카에서 본 적이 없어. 그들이 아프리카에 있기에는 너무 뜨거웠을 거야’[6]라고 남겼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프랑스어, 기하학, 요리와 대수학을 배우고 있어. 아빠는 프랑스에서 열 달 정도 있다가 집에 돌아오셨고, 우리는 전쟁이 얼마 후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 내 사진 두 장을 보낼게. 한 장은 뒷마당에서 수영복을 입은 사진이고, 나머지 한 장은 페어리들과 찍은 사진이야. 엘시가 사진을 찍어줬어.[6]

공개와 초기 검증

두 사진들은 1919년 중반 엘시의 어머니가 브래드포드의 신지학협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공개됐다. 이날 저녁에는 ‘페어리 생명체’에 대한 강의가 있었으며, 그날 모임의 끝에 폴리 라이트는 그의 딸과 조카딸이 찍은 페어리 사진을 강연자에게 보여줬다. 사진에 감동한 강연자는 몇 달 후에 헤로깃에서 열린 신지학협회 연회에서 사진을 전시했는데, 협회의 지도급 인사인 에드워드 가드너(Edward Gardner)가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7]. 신지학의 핵심 신념 중 하나는 인류는 ‘완벽도’가 높아져 가는 진화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가드너는 사진이 신지학 운동에 끼칠 잠재적 중요성을 인지했다.

두명의 젊은 소녀들이 다른 사람들이 봤던 페어리를 볼 수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그들의 형상을 사진판에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밀도를 가지고 물질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음 진화 주기가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8].

가드너는 원래 촬영한 네거티브 유리판과 함께 프린트를 사진 전문가인 해럴드 스넬링(Harold Snelling)에게 보냈다. 스넬링은 ‘두 네거티브는 완전히 진본이며, 판지나 종이 모델을 사진에 포함시킨 흔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 진짜 사진이다’는 의견을 냈다[9]. 다만 그는 사진이 페어리를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이 사진들은 그 당시에 카메라 앞에 있던 것을 곧바로 찍은 것들’이라고만 표현했다[10]. 가드너는 프린트가 스넬링에 의해 ‘확증되게’ 한 이후, 영국 전역에서 진행한 묘사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인쇄하기에 더욱 도움이 되는’ 새 네거티브 원판을 만들어냈다[7][8]. 스넬링도 가드너의 강연에서 판매하기 위한 사진 프린트를 공급했다[11][12].

작가이자 유명한 심령술사인 아서 코난 도일경은 심령주의자들의 잡지 ‘빛’(Light)의 편집자로부터 사진을 알게 됐다[13]. 이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아서에게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페어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방송인이자 역사가인 마그누스 마그누손(Magnus Magnusson)에 따르면 이 페어리 사진은 “신이 보내준”(seemed like a godsend)듯했다. 도일은 사진의 배경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1920년 6월에 가드너에게 연락했으며, 그의 기사에 사진을 사용해도 될지 허락을 받기 위해 엘시와 그의 아버지에게도 연락했다. 아서 라이트는 도일이 개입한 것에 대해 ‘분명하게 감명을 받고’, 그에게 출판 허락을 주었다. 다만 그는 이것이 실제 사진이라면, 이미지가 돈에 ‘더럽혀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기반에 돈을 받기를 거부했다[14].

가드너와 도일은 사진 회사인 코닥사에 두번째 전문가 의견을 요청했다. 회사의 기술자들이 좋아진 프린트를 검증한 이후, 스넬링이 말한것과 같이 ‘조작되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지만, ‘페어리를 찍은 진본사진이라는 … 결정적 증거로서 여겨질 수는 없다’고 결론 냈다[15]. 그 결과 코닥사는 진정성 증명서를 발급하기를 거부했다[16]. 가드너는 기술자 한 명이 “어쨌든, 페어리가 사실일 리 없으니, 사진 또한 어떻게든 조작됐을 것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코닥 기술자들이 사진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17]. 다른 사진회사인 일포드에서도 프린트를 검증했는데, “일부 위장 증거”가 있다고 명확하게 보고했다. 가드너와 도일은 세 전문가 평가 결과를 검토한 결과 2:1로서 진정성이 확인된다고 최종적으로 평가 내렸다[17].

도일은 또한 사진을 물리학자이자 선도적 정신의학 연구가인 올리버 로지 경에게도 보여줬는데, 그는 사진이 거짓이라 믿었다. 그는 여러 댄서들이 페어리로 분장한 것이라고 제안하며, 그들의 “명백한 ‘파리식’ 헤어스타일”에 대해 의심을 표명했다[16].

1920년 추가 촬영

이후 도일은 곧바로 임박한 호주에서의 강연 투어에 몰두한 후에, 1920년 7월에, 가드너에게 라이트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했다. 이 때, 프랜시즈는 가족들과 스카버러로 이주해 지내고 있었다[17]. 엘시의 아버지는 가드너에게 사진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지만, 소녀들이 없었을 때 침실이나 개울(beck) 주변을 뒤지며 사진 조각이나 잘라낸 자욱 등을 찾아봤지만, ‘원인이 되는’ 것을 하나도 찾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18]. 가드너는 라이트 가족이 정직하고 존경할만하다고 믿었다. 의심을 넘어 사진의 진정성의 중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7월에 두대의 접이식 원판 카메라와 비밀 표식을 숨겨둔 스물네 장의 사진 원판을 가져갔다. 마침 프랜시즈가 여름방학을 맞아 라이트 가정을 방문했기 때문에 프랜시즈와 엘시는 페어리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을 터였다[18]. 가드너는 가족을 만나 두 명에게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켜 주고, 페어리 사진을 찍을 때까지 카메라를 가지고 있도록 했다[19].

가드너가 돌아간 뒤로 8월 19일까지 날씨가 사진을 찍기에 좋지 않았다. 프랜시즈와 엘시가 페어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다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말했기 때문에, 엘시의 어머니가 여동생과 차를 마시기 위해 떠나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혼자가 됐다. 그녀가 없을 때 소녀들은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 두 장에서 페어리들이 나타났다. 첫 사진인 〈프랜시즈와 뛰는 페어리〉에서, 프랜시즈는 그녀의 코 가까이에 날개달린 페어리를 지켜보고 있다. 두번째 사진인 〈엘시에게 헤어벨 꽃다발을 내미는 페어리〉는, 가지 위에 떠 있거나 한 발로 서 있는 페어리가 엘시에게 꽃을 건내는 장면이 담겼다. 이틀 후에 그들은 마지막 사진, 〈페어리들의 일광욕〉을 찍었다.

사진 원판들은 솜으로 포장돼 런던에 있던 가드너에게 돌아갔고, 가드너는 ‘환상적인’ 전보를 멜버른에 있던 도일에게 보낸다[16]. 도일은 ‘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당신의 기록과 우리의 출판 결과물을 확증하는 세장의 놀라운 사진을 받았다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 우리는 교령회에서 앞으로도 가시적 징조가 다가올 것이라는 지속적인 메시지를 받았습니다’고 답장했다[16].

공개 발표와 이후 반응

스트랜드지의 1920년 12월호에 코난 도일의 기고가 실렸다[20]. 기사에는 1917년의 사진 두 장의 고화질 프린트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잡지는 출간 며칠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기사에서는 두 명의 신원 보호를 위해, 프랜시즈는 앨리스(Alice)로, 엘시는 아이리스(Iris)로, 라이트 가족 또한 카펜터스(Carpenters)로 표기되었다[20][21]. 열정적이고 헌신된 심령주의자로서, 도일은 사진이 페어리의 존재를 대중에게 확신하게 한다면 다른 심령 현상도 더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바랐다[22].

기고 발표 이후 초기 언론의 보도는 ‘놀라움과 당황’이 섞인[23] ‘복합적’인 반응이 뒤섞였다[24]. 역사소설가이자 시인인 모리스 휴렛은 문예지인 존 오 런던 주간지(John O' London's Weekly)에 연속 기사를 출판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아이들을 알고, 아서 코난 도일 경이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단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카펜터스의 숙녀들이 다리 하나를 가져갔다고 [마음을 정했다.]’[24]고 결론지었다. 시드니의 신문지인 트루스(Truth)도 1921년 1월 5일자 기사에서 ‘이 페어리 사진들에 대한 진정한 설명에 필요한 것은 오컬트 현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지식이다.’[19]라는 유사한 관점을 나타냈다. 몇몇 셀러브리티들은 더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교육, 사회 개혁가인 마가렛 맥밀란(Margaret McMillan)은 ‘이 소중한 아이들이 이러한 놀라운 선물을 내려받은 것이 놀라울 뿐이다’라고 적었다[24]. 소설가 핸리 드 베르 스택풀(Henry De Vere Stacpoole)은 액면가로 페어리와 아이들의 사진을 사기로 결정했다[19]. 가드너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앨리스(프랜시즈)의 얼굴을 보세요. 아이리스(엘시)의 얼굴을 보세요. 천만 명의 얼굴과 형상이 지닌 듯한 진리라는 놀라운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복제기술자나 위조전문가도 복제할 수 없는 신의 통화입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사진사이자 영국의 엑스선 치료의 선구자인 존 홀 에드워즈(John Hall-Edwards)는 특히 활발했던 비판자였다[25]

근거에 기반해 나는 이 사진들이 ‘조작됐을’ 것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의사로서, 아동들의 심리에 이러한 황당한 생각을 주입시킨다면 이후의 삶에 징후와 함께 불안장애와 정신불안을 겪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사진들에 신경쓰는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초현실적인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분위기를 비판한다.[19]

도일은 1921년에 스트랜드지에 두번째 기사를 발표해, 나머지 사진들을 싣고, 페어리 발견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덧붙였다. 이 기사는 1922년도에 발간된 〈페어리의 도래〉(The Coming of the Fairies)의 기반을 형성했다[10]. 전과 같이, 사진들은 반쯤 받아들여진 채로 수용됐다. 회의론자들은 페어리들이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전통적 페어리와 같이 의심스러워 보인다’며 ‘매우 현대적인 헤어스타일’을 가졌다고 언급했다[19].

마지막 활동

가드너는 1921년 8월에 심령주의자 거프리 허드슨과 함께 마지막으로 코팅리를 방문해, 프랜시즈와 엘시에게 카메라와 원판을 건넸다. 이번에는 소녀 누구도 페어리를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사진도 찍지 않았지만, 허드슨은 ‘어디에서나 [페어리를] 볼’수 있었다면서, 주변의 많은 관찰기록을 남겼다[24]. 이제 엘시와 프랜시즈는 페어리와 관련된 모든 일에 지친 듯 하다. 몇년 후에 엘시는 허드슨이 찍은 그와 프랜시즈의 사진을 보고, “페어리에 지쳐버린 [모습을] 봐요”라고 말했다. 엘시와 프랜시즈는 나중에 그들이 ‘장난스레’ 허드슨과 ‘놀아’주었으며[26], 허드슨을 ‘가짜’[24]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의 검증

코팅리 요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1921년 이후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엘시와 프랜시즈는 이후에 결혼해 오랫동안 영국 바깥에서 살았다[27]. 1966년에,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지 기자가 마침 잉글랜드에 돌아와 있던 엘시를 찾아냈다. 엘시는 그 해 인터뷰에서 페어리들이 ‘내 상상의 결과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진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믿고 있을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었다[28]. 인터뷰 이후 미디어들이 프랜시즈와 엘시의 사진에 잠시 관심을 보였다. BBC 텔레비전의 전역 프로그램이 사건을 1971년에 조사했지만, 엘시는 “우리 상상의 결과물인 사진이라고 말했고, 그것이 내가 말씀드린 바”라며 입장을 반복했다[28].

1976년 9월 엘시와 프랜시즈는 요크셔 텔레비전의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저널리스트인 어스틴 미셸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서, 두 명 모두 “이성을 가진 인간은 페어리를 보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사진을 만들어 낸적은 없다고 부인했다[26]. 1978년 마술사이자 회의론자인 제임스 랜디초자연주장에 대한 과학조사위원회(SCICOP: Committee for the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 소속 팀이 사진들을 컴퓨터 보정절차를 통해 조사한 결과 페어리들을 실이 지탱한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진은 거짓이었다고 결론지었다[29]. 당시 영국 사진학회지(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 편집자였던 거프리 크롤리(Geoffrey Crawley)는 ‘전후 최초의’ ‘사진과 이를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중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1982년 12월부터 83년 2월까지 사진학회지에 연속 기고문을 발표했으며[30], 결과적으로 사진은 가짜였다고 결론지었다[31].

고백

Cottingley fairies illustration.jpg

1983년, 사촌들은 언익스플레인드(The Unexplained)지에 그들이 실제로 페어리를 본 것은 사실이었다는 주장을 유지하면서도, 사진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 인정했다. 1985년 〈클러크의 이능세계〉(Arthur C. Clarke's World of Strange Powers) 인터뷰에 따르면, 엘시는 그당시 유명했던 어린이 책인 〈메리 공주의 선물책〉(Princess Mary's Gift Book, 1914)의 일러스트레이션사진을 판지에 복사해, 거기에 날개를 덧붙였다. 그 이후에 판지를 잘라내서 그 뒤에 햇핀을 붙인 이후에, 사진을 찍고 나서는 소품을 개울가에 버렸다고 밝혔다[32].

하지만 마지막 사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엘시는 다섯째 사진도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프랜시즈는 진짜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초반의 인터뷰에서 프랜시즈는 “사진을 찍었을 때는 축축한 토요일 오후였고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엘시는 준비한 것이 없었어요. 저는 수풀 속에서 준비하는 페어리를 보고 나서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라고 말했다[19]. 프랜시즈와 엘시 모두가 다섯번째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1983년 4월 9일 더 타임스에 실린 편지에서, 거프리 크롤리는 이러한 불일치가 사진 속 ‘수풀 속의 페어리 그림이 의도치 않게 이중 노출된 것’을 근거로 ’그들이 각자 찍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12].

동일 인터뷰에서, 엘시는 그와 프랜시즈가 셜록홈즈 시리즈의 작가인 도일을 속인 이후 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놀라 있었다고 말했다. “두명의 촌구석 아이와 코난 도일과 같은 뛰어난 사람이 [만났다면], 글쌔요, 우리는 그냥 조용히 있었겠죠.” 같은 인터뷰에서 프랜시즈는 “나는 이것이 사기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어요. 이건 그냥 엘시랑 내가 가졌던 놀이였을 뿐이고 지금까지도 저는 왜 그들이 믿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이 받아들였어야 했나 보죠.”라고 말했다[32].

고백 이후

인터뷰 이후 프랜시즈는 1986년, 엘시는 1988년에 세상을 떠났다[26].

1998년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서 코난 도일의 〈페어리의 도래〉의 초판을 포함한 소장품들이 총 21,620파운드에 낙찰됐다[33] 같은 해, 거프리 크롤리도 코팅리 요정 소장품을 국립영화·사진·텔레비전박물관(현 국립과학미디어박물관)에 판매했고, 현재 전시되고 있다. 컬렉션에는 사진 프린트, 두명이 사용했던 카메라 두대, 엘시가 그린 페어리 수채화, 엘시가 장난(hoax)임을 인정하는 아홉 장의 편지 등이 포함돼 있다[34]. 2001년 런던 옥션에서 유리사진판이 6,000 파운드에 낙찰되었다[35]. 이후에도 사진 소장품들은 계속해서 미술품 경매소에 나오고 있으며,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수천 파운드 이상의 낙찰을 받고 있다[36].

2009년 1월, 프랜시즈의 딸인 크리스틴 린치(Christine Lynch)가 도일이 소녀에게 준 사진기 한 대와 사진을 들고 BBC 원의 프로그램인 〈앤틱 로드쇼〉의 벨파스트편에 출현했다. 크리스틴은 전문가인 폴 앳터버리(Paul Atterbury)에게 자신도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다섯번째 사진이 진짜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앳터버리는 전체 소장품 가격을 25,000 ~ 30,000 파운드로 감정했다[37]. 몇 달 후에, 프랜시스의 회고록 초판이 〈코팅리 요정에 대한 생각〉(Reflections on the Cottingley Fairie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38][39] 책에는 엘시와 프랜시즈 사이의 ‘씁쓸한’ 내용까지 담긴 서한문도 공개됐다. 1983년에 프랜시즈가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16살이 됐을 때 가드너가 꽃을 건내며 신지학회 모임에 참여할 것을 권했을 때 느꼈던 불쾌감으로 인해 사진을 싫어하기 시작했다'고 적혀있었다[40].

1997년 개봉된 영화 〈페어리테일〉(FairyTale: A True Story)와 〈포토그래핑 페어리〉(Photographing Fairies) 모두 코팅리 페어리를 둘러싼 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다[41]. 1994년에 테리 존스(Terry Jones)와 브라이언 프로드(Brian Froud)는 〈코팅턴 여사가 낸 페어리 책〉(Lady Cottington's Pressed Fairy Book)이라는 패러디 책을 내기도 했다.[42]

2017년 또다른 페어리 사진 두장이 소녀들의 부모들이 음모론에 가담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나타났다.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원래 페어리 사진보다 상당히 왜곡된 사진들이 만들어졌으며, 이중 한 장은 1918년 스피어지(The Sphere newspaper) 게제됐는데, 이는 가족들의 직계가족 바깥에 원본이 보여지기 전의 일이었다.[43]

  1. 윤태희 기자. “'셜록 홈스' 작가도 속인 가짜 요정 사진 경매..1억원 예상”, 《나우뉴스》, (서울신문), 2019년 4월 1일 작성. 2021년 7월 6일에 확인.
  2. 사진상 정황으로는 3시쯤이라고 되어 있고, 폴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빌려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3. Doyle (1922), pp. 50-51.
  4. 4.0 4.1 4.2 Magnusson (2006), pp. 97-98.
  5. Prashad (2008), p. 42.
  6. 6.0 6.1 Prashad (2008), p. 40.
  7. 7.0 7.1 Magnusson (2006), pp. 98-99.
  8. 8.0 8.1 Smith (2007), p. 382.
  9. Magnusson (2006), pp. 99.
  10. 10.0 10.1 Smith (2007), p. 389.
  11. Smith (2007), p. 401.
  12. 12.0 12.1 Crawley, Geoffrey, “More to Discover about Fairies”, 《The Times》, 1983년 4월 9일 작성.
  13. Smith (2007), p. 383.
  14. Magnusson (2006), pp. 99-100.
  15. Smith (2007), p. 384.
  16. 16.0 16.1 16.2 16.3 Magnusson (2006), p. 101.
  17. 17.0 17.1 17.2 Smith (2007), p. 385.
  18. 18.0 18.1 Magnusson (2006), p. 102.
  19. 19.0 19.1 19.2 19.3 19.4 19.5 Cooper, Joe. Cottingley: At Last the Truth 117 (2).
  20. 20.0 20.1 (영어) Doyle, A. Conan. Fairies Photographed. 《Strand Magazine》 60 (6(360)): 462-468.
  21. Magnusson (2006), p. 103.
  22. Roden, Barbara. The Coming of the Fairies: An Alternative View of the Episode of the Cottingley Fairies. The Arthur Conan Doyle Society. 2010년 9월 17일에 보존된 문서. 2010년 4월 25일에 확인.
  23. Smith (2007), p. 391.
  24. 24.0 24.1 24.2 24.3 24.4 Smith (2007), p. 390.
  25. (영어) Major John Hall-Edwards. 버밍엄시 의회 (2010년 4월 23일). 2012년 9월 28일에 보존된 문서.
  26. 26.0 26.1 26.2 Magnusson (2006), p. 105.
  27. Smith (2007), p. 393.
  28. 28.0 28.1 Magnusson (2006), p. 104.
  29. Smith (2007), pp. 394-5.
  30. Crawley, Geoffrey (1982-1983년). That Astonishing Affair of Cottingley Fairies. 《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 129-130., 1보 (1982년 12월 24일, 1375-80), 2보(12월 31일, 1406-14), 3보(1983년 1월 7일, 9-15), 4보(1월 21일, 66-71), 5보(91-96), 6보(2월 4일, 117-121), 7보(142-5, 153, 159), 8보(2월 18일, 170-1)
  31. Smith (2007), p. 395.
  32. 32.0 32.1 "Fairies, Phantoms, and Fantastic Photographs". 프레젠터: Arthur C. Clarke, 나레이터: Anna Ford, Arthur C. Clarke's World of Strange Powers. ITV. 1985년 5월 22일 방영, 시즌1 6화
  33. 'Fairy' fakes sell for fortune”, 《BBC News》, 1998년 7월 16일 작성. 2007년 5월 11일에 확인.
  34. Sorry, Mel - they're ours!”, 《Bradford Telegraph & Argus》, 1998년 4월 1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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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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