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타리
산울타리 또는 생울타리(生―, 영어: Hedge(row))는 이웃한 토지 등의 지역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분리하기 위해 나무나 관목을 빽빽하게 (1m 이하 간격으로) 심어 만든 이어진 장벽이다. 도로와 인접한 들판 또는 한 들판과 다른 들판을 분리하는 데 사용되며, 보카주와 같이 인접한 농작물의 생육을 도와주기 위한 방풍림 역할도 한다. 특히 열대지역에서는 일반 쇠울타리에 비해 유지보수비용을 줄이는 장점이 있어 흔하게 사용된다[1]. 울타리를 깎으면 또한 간단한 형태의 토피어리가 된다.
역사
울타리는 구조와 재료가 점차 발전해 왔다. 최초의 울타리는 신석기 시대(BCE 4000-2000 시기)에 곡물 작물용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약 0.1 헥타르 규모였던 최초의 밭은 약 5-10 헥타르의 농장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도, 중세의 밭 정리 과정에서, 19세기 황무지와 고지 지주의 인클로저 운동 시기 속속 새로운 형태의 울타리가 등장했다.
Hedge의 어원은 고대영어(hecg)[2], 독일어(hecke), 네덜란드어(haag) 시절로 돌아간다. 864년 카롤루스 2세 칼부스는 대부분의 요새가 목제 방책으로 건설되던 시기 사람들이 무단으로 하이(haies)와 페르테(fertés), 즉 산사나무로 엮인 울타리를 짓고 있다고 불평한 기록을 남겼다[3]. 영국, 아일랜드섬, 저지대 국가에서는 들판과 길을 분리하는 울타리가 중세시대에 시작되었다.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영주의 개방형 농지 제도를 위해 초기 울타리가 파괴되었다. 많은 울타리가 인클로저 법령 이후 교체되었다가 현대 농업 집약화 과정에서 다시 제거되었으며, 이후 현재는 야생동물 때문에 다시 심겨 있다. 한편 노르망디의 산울타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D-Day 침공 이후 연합군의 진격을 늦추는 장벽이 되었다. 이에 연합군은 장갑차를 개조하여 교두보에서 노르망디의 보카주로 돌파하는 데 사용하였다.
구성
주
- ↑ Cherry, Stefan D., Fernandes, Erick C.M. (1998년 3월 20일). Live Fences. Cornell University. 2014년 5월 29일에 보존된 문서.
- ↑ Hedge, n.. 옥스퍼드 영어사전. 2025년 6월 24일에 확인.
- ↑ Rouche, Michel (1987년). 〈Private life conquers state and society〉, Paul Veyne: 《A History of Private Life vol I》. Harvard University Press, 428쪽. ISBN: 0-674-399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