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런던철도: 두 판 사이의 차이

모든 지식의 총합을 위한 자유지식위키, 리프위키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4번째 줄: 14번째 줄:
노선 제안은 메트로폴리탄 철도{{small|Metropolitan and District railways, MR}}와 디스트릭트 철도{{small|District railways, DR}}의 노선망 안쪽에 지어진다는 이유로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시 법인 또한 C&SLR 건설시에 있었던 지반침하로 인한 건물 파손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주임신부와 사목단 또한 대성당 건물 토대의 침하 위험을 우려하여 반대했다. 터널이 도시의 하수 시스템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법률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상원은 C&SLR이 개통되기 전까지 모든 결정을 미루도록 권고하며 법률안을 기각했다.
노선 제안은 메트로폴리탄 철도{{small|Metropolitan and District railways, MR}}와 디스트릭트 철도{{small|District railways, DR}}의 노선망 안쪽에 지어진다는 이유로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시 법인 또한 C&SLR 건설시에 있었던 지반침하로 인한 건물 파손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주임신부와 사목단 또한 대성당 건물 토대의 침하 위험을 우려하여 반대했다. 터널이 도시의 하수 시스템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법률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상원은 C&SLR이 개통되기 전까지 모든 결정을 미루도록 권고하며 법률안을 기각했다.


1890년 11월, C&SLR이 개통(1890년 11월 4일)할 즈음에, CLR은 1891년 회기용 신규 사적법률안 공지를 공포했다. 노선이 서쪽으로 늘어나 노팅힐 하이 스트리트와 홀랜드 파크 애비뉴 아래를 지나셰퍼즈 부시의 동쪽 모퉁이까지 연장하고, 차고지와 발전소를 종점 북측, 즉 우드 레인 동쪽으로 이전했다. 노선의 서쪽 연장 제안은 1890년 초에 CLR과 비슷한 노선을 제안했던 저심도 지하철인 런던 센트럴 서브웨이{{Small|London Central Subway}}의 폐기된 계획의 영향을 받았다. 동쪽 종점이 콘힐{{small|Cornhill}}로 바뀌면서 사우샘프턴 로우의 역도 블룸스버리로 바뀌었다. C&SLR과의 직결 계획은 CLR 안의 터널 직경이 11피트 6인치(3.51 m)로 늘어나며 폐기되었다. 법률안은 이듬해 양 원으로부터 가결을 받았고 1891년 8월 5일 황실의 동의를 받았다.
1890년 11월, C&SLR이 개통(1890년 11월 4일)할 즈음에, CLR은 1891년 회기용 신규 사적법률안 공지를 공포했다. 노선이 서쪽으로 늘어나 노팅힐 하이 스트리트와 홀랜드 파크 애비뉴 아래를 지나셰퍼즈 부시의 동쪽 모퉁이까지 연장하고, 차고지와 발전소를 종점 북측, 즉 우드 레인 동쪽으로 이전했다. 노선의 서쪽 연장 제안은 1890년 초에 CLR과 비슷한 노선을 제안했던 저심도 지하철인 런던 센트럴 서브웨이{{Small|London Central Subway}}의 폐기된 계획의 영향을 받았다. 동쪽 종점이 콘힐{{small|Cornhill}}로 바뀌면서 사우샘프턴 로우의 역도 블룸스버리로 바뀌었다. C&SLR과의 직결 계획은 CLR 안의 터널 직경이 11피트 6인치(3.51 m)로 늘어나며 폐기되었다. 법률안은 이듬해 양 원으로부터 가결을 받았고 1891년 8월 5일 다른 노선 법률안과 함께 황실의 동의를 받아 《1891년 센트럴 런던철도법》{{small|Central London Railway Act, 1891}}이 발효되었다. 1991년 11월, CLR은 새 법률안을 내며 노선의 동쪽 종점을 그레이트 이스턴철도{{small|Great Eastern Railway, GER}}의 동측 종점인 리버풀 스트리트역으로 연장했으며, 콘힐 역은 로열 익스체인지에 새롭게 제안된 역으로 변경되었다. 이 법도 1892년 6월 28일에 《1892년 센트럴 런던철도법》으로 발효되었다.


<!--  
<!-- The money to build the CLR was obtained through a syndicate of financiers including Ernest Cassel, Henry Oppenheim, Darius Ogden Mills, and members of the Rothschild family.[12] On 22 March 1894, the syndicate incorporated a contractor to construct the railway, the Electric Traction Company Limited (ETCL), which agreed a construction cost of £2,544,000 (approximately £308 million today)[13] plus £700,000 in 4 per cent debenture stock.[14] When the syndicate offered 285,000 CLR company shares for sale at £10 each in June 1895,[14] only 14 per cent was bought by the British public, which was cautious of such investments following failures of similar railway schemes.[15] Some shares were sold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but the unsold remainder was bought by members of the syndicate or by the ETCL.[14]
n November 1890, with the C&SLR about to start operating, the CLR announced a new bill for the 1891 parliamentary session.[6] The route was extended at the western end to run under Notting Hill High Street (now Notting Hill Gate) and Holland Park Avenue to end at the eastern corner of Shepherd's Bush Green, with the depot and power station site relocated to be north of the terminus on the east side of Wood Lane. The westward extension of the route was inspired by the route of abandoned plans for the London Central Subway, a sub-surface railway that was briefly proposed in early 1890 to run directly below the roadway on a similar route to the CLR.[7] The eastern terminus was changed to Cornhill and the proposed Southampton Row station was replaced by one in Bloomsbury. Intermediate stations were added at Lansdowne Road, Notting Hill Gate, Davies Street (which the CLR planned to extend northwards to meet Oxford Street) and at Chancery Lane.[8] The earlier plan to connect to the C&SLR was dropped and the diameter of the CLR's tunnels was increased to 11 feet 6 inches (3.51 m).[7] This time the bill was approved by both Houses of Parliament and received royal assent on 5 August 1891 as the Central London Railway Act, 1891.[9] In November 1891, the CLR publicised another bill. The eastern end of the line was re-routed north-east and extended to end under the Great Eastern Railway's (GER's) terminus at Liverpool Street station with the Cornhill terminus dropped and a new station proposed at the Royal Exchange.[10] The proposals received assent as the Central London Railway Act 1892 on 28 June 1892 -->
 
Construction, 1896–1900
To design the railway, the CLR employed the engineers James Henry Greathead, Sir John Fowler, and Sir Benjamin Baker.[8] Greathead had been the engineer for the Tower Subway and the C&SLR, and had developed the tunnelling shield used to excavate those companies' tunnels under the River Thames. Fowler had been the engineer on the Metropolitan Railway, the world's first underground railway opened in 1863, and Baker had worked on New York's elevated railways and on the Forth Railway Bridge with Fowler. Greathead died shortly after work began and was replaced by Basil Mott, his assistant during the construction of the C&SLR.[8]
 
Like most legislation of its kind, the act of 1891 imposed a time limit for the compulsory purchase of land and the raising of capital.[note 3] The original date specified for completion of construction was the end of 1896, but the time required to raise the finance and purchase station sites meant that construction had not begun by the start of that year. To give itself extra time, the CLR had obtained an extension of time to 1899 by the Central London Railway Act, 1894.[16][17] Construction works were let by the ETCL as three sub-contracts: Shepherd's Bush to Marble Arch, Marble Arch to St Martin's Le Grand and St Martin's Le Grand to Bank. Work began with demolition of buildings at the Chancery Lane site in April 1896 and construction shafts were started at Chancery Lane, Shepherd's Bush, Stanhope Terrace and Bloomsbury in August and September 1896.[18]-->






{{번역중|Central_London_Railway}}
{{번역중|Central_London_Railway}}

2023년 11월 11일 (토) 03:13 기준 최신판

센트럴 런던철도
정보
종류 지하철
상태 런던 센트럴선의 일부
기점 셰퍼즈 부쉬얼링역
종점 뱅크역리버풀 스트리트
운영
시설
영업 거리 9.14㎞ (5.68마일)
실거리 9.69㎞ (5m 17')

센트럴 런던철도(영어: Central London Railway, CLR)은 런던에서 1900년부터 운영된 런던의 고심도 지하철도노선이었다. CLR이 건설한 터널과 역사는 현재는 런던 센트럴선의 중심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운행 초기에는 2페니 튜브(Twopenny Tube)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었다.

해당 계획을 추진한 지하철 회사는 1889년에 세워졌으나, 건축비용은 투자자 조합에 의해 1895년 모아졌으며 1896년부터 1900년까지 운행되었다. 개통 당시, CLR은 셰퍼즈 부쉬Shepherd's Bush부터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까지 전구간 지하 9.14㎞ (5.68마일)의 복선구간에 13개 역을 운행하였으며, 서측 종점 서북부에 차량기지와 발전소를 두었다. 이후 노선을 루프선으로 개선하려는 제안 대신 연장이 이뤄지면서 1908년에 서측 종점이 우드레인Wood Lane, 동측 종점은 1912년리버풀 스트리트Liverpool Street로 연장되었다. 1920년에는 GWR선을 따라 얼링까지 연장돼 총 연장이 17.57㎞ (10.92마일)로 늘어났다.

운영 초기 투자자에게 돈을 잘 상환한 후에, 타 지하철 노선과 신규 버스들과의 경쟁이 늘어나면서 CLR은 승객수 감소로 고생했다, 1913년에 CLR은 대다수의 런던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던 공기업인 런던지하전기철도회사Underground Electric Railways Company of London(UERL)와 합병되었다. 1933년 CLR은 다른 UERL 노선과 함께 공영 노선으로 전환됐다.

센트럴 런던철도 전체 노선도

노선 개통까지

최초 제안 (1889-1892년)

1889년 11월, CLR은 영국 의회에 1890년도 회기용 사적법률안 공지를 공포했다. 법률안은 퀸스로드 (현 퀸스웨이)와 베이스워터로드의 교차점에서 킹 윌리엄 스트리트를 잇는 지하철을 제안했다. 첫 계획에는 베이스워터 로드, 옥스퍼드 스트리트, 뉴 옥스퍼드 스트리트, 하이 홀번, 홀번, 홀번 수로, 뉴게이트 스트리트, 칩사이드, 폴트리를 잇는 복선 철도를 짓고 이를 아서 가 서안에서 시티 앤 사우스런던 철도City and South London Railway, C&SLR와 직결할 것을 제안했다. 역사는 퀸스로드, 스탠호프 테라스, 마블 아치, 옥스퍼드 서커스, 토트넘 코트로드, 사우샘프턴 로우, 홀번 서커스, 세인트마틴스 르 그랑, 킹 윌리엄 스트리트에 역을 지을 것이 제안되었다. 터널은 실드 터널링 공법으로 직경 11피트 (3.35m)의 원형으로, 역사의 경우 터널 반경이 22피트 (6.71m)이나 29피트(8.84m)가 되며, 철제 주조 세그먼트로 보완될 것이다. 차량기지와 발전소는 퀸스로드 서쪽의 1.5에이커(0.61㏊) 부지에 건설되며, 역마다 수압식 엘레베이터를 지을 예정이 있었다.

노선 제안은 메트로폴리탄 철도Metropolitan and District railways, MR와 디스트릭트 철도District railways, DR의 노선망 안쪽에 지어진다는 이유로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시 법인 또한 C&SLR 건설시에 있었던 지반침하로 인한 건물 파손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주임신부와 사목단 또한 대성당 건물 토대의 침하 위험을 우려하여 반대했다. 터널이 도시의 하수 시스템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법률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상원은 C&SLR이 개통되기 전까지 모든 결정을 미루도록 권고하며 법률안을 기각했다.

1890년 11월, C&SLR이 개통(1890년 11월 4일)할 즈음에, CLR은 1891년 회기용 신규 사적법률안 공지를 공포했다. 노선이 서쪽으로 늘어나 노팅힐 하이 스트리트와 홀랜드 파크 애비뉴 아래를 지나셰퍼즈 부시의 동쪽 모퉁이까지 연장하고, 차고지와 발전소를 종점 북측, 즉 우드 레인 동쪽으로 이전했다. 노선의 서쪽 연장 제안은 1890년 초에 CLR과 비슷한 노선을 제안했던 저심도 지하철인 런던 센트럴 서브웨이London Central Subway의 폐기된 계획의 영향을 받았다. 동쪽 종점이 콘힐Cornhill로 바뀌면서 사우샘프턴 로우의 역도 블룸스버리로 바뀌었다. C&SLR과의 직결 계획은 CLR 안의 터널 직경이 11피트 6인치(3.51 m)로 늘어나며 폐기되었다. 법률안은 이듬해 양 원으로부터 가결을 받았고 1891년 8월 5일 다른 노선 법률안과 함께 황실의 동의를 받아 《1891년 센트럴 런던철도법》Central London Railway Act, 1891이 발효되었다. 1991년 11월, CLR은 새 법률안을 내며 노선의 동쪽 종점을 그레이트 이스턴철도Great Eastern Railway, GER의 동측 종점인 리버풀 스트리트역으로 연장했으며, 콘힐 역은 로열 익스체인지에 새롭게 제안된 역으로 변경되었다. 이 법도 1892년 6월 28일에 《1892년 센트럴 런던철도법》으로 발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