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가브리엘라

Ellif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10월 21일 (수) 13:38 판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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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이탈리아어: Maria Gabriella Sagheddu, 1914년 3월 17일 ~ 1939년)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소속된 이탈리아인 수녀 였으며, 25살의 나이에 그로타페라타 수녀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1983년 교회일치에 대해 일생동안 베푼 영적 공헌을 인정받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가톨릭 일치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됐다.

생애

마리아 수녀는 1914년 사르디니아 섬 동부 해안에 있는 마을인 도르갈리의 양치기 가정에서 8명의 자녀 중 5번째로, 마리아 사게두(이탈리아어: Maria Sagghedu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1]. 얼마 지나지 않아 1919년 아버지가 돌아가게 됐다[2].

She was said to be obstinate as a child, but was also known to be loyal and obedient. "She would say no but she would go at once", is said of her.[3] At the end of her primary studies, she had to leave school to help out at home where she showed herself serious and endowed with a great sense of duty.[2]

Motivated to deepen her piety after the death of her younger sister, Sagghedu enrolled in a Catholic youth group called "Azione Cattolica" when she was eighteen.[3] She began to instruct the local youth in the Catholic faith and to help the aged of the region. In the process, she began to intensify her prayer life. At first, she taught catechism with a stick in hand. But one day the local priest took away the stick and replaced it with a note that said, "Arm yourself with patience, not a stick." Maria accepted the criticism and changed her methods.[2]

At the age of twenty, Sagghedu entered the Trappistine Abbey of Grottaferrata,[1] near Rome, on the Italian mainland, where she was given the religious name of Maria Gabriella. The abbess of the monastery at that time there was Mother Maria Pia Gullini, O.C.S.O., whose enthusiasm for ecumenism (a fruit of the efforts of Abbé Paul Couturier) was passed on to the community.[3] Devoted to this cause, she offered herself as a spiritual sacrifice for the unity of the Christian church during the Week of Prayer for Christian Unity of 1938. She then immediately fell ill with tuberculosis, and, after suffering for 15 months, died on 23 April 1939. Significantly, the Gospel reading for that Sunday included the words, "There will be one flock and one shepherd. (John 10:16)"

영성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녀를 당신과의 연합으로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감사에 감동을 받았다. 다른 가톨릭 성인들로 알려진 사람들과 같이, 그녀는 하나님의 의지 앞에 신뢰함으로 자기의 완전한 부인을 통해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찾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틴어: Ut unum sint)' 에서 그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일치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치 부족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깊은 개인적 대화 속에서, 일치에 대한 관심이 제외될 수 없습니다. … 이 의무를 재강화하기 위해 나는 보편 교회의 신도들 앞에 1983년 1월 25일에 내가 시복한 트라피스트 수녀, 일치의 복녀 마리아 가브리엘라라는 내가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을 설정했습니다.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라는 성소의 부름을 받아, 요한복음 17장에 중심한 묵상과 기도에 그의 삶을 헌신하고, 그의 삶을 그리스도인 일치에 바쳤습니다. …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의 사례는 교훈적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일치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특별한 시간, 상황, 또는 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기도는 모두,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를 위한 모델로서 제시됩니다.[4]

시복

가브리엘라는 1983년 그녀가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하는 결정에 도움을 준 기간이었던 그리스도인 일치주간의 마지막 날인 1월 25일로마에 위치한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다[5]. 이를 통해,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의 행동의 성성을 확증했으며, 특히 에큐메니즘과 관련된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롤 모델로 그녀를 설정했다.

가브리엘라의 사후, 요한복음 17장이 너무나 자주 읽혀져 낡고 누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주목받았다. 이 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제자들에 대해 기도하고 있다. 특히 그녀가 주목한 지점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 개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1, 개개)라고 기도하신 부분이다. 이 절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있어서 주요 모토로 사용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제물로 바쳤다고 주장한다.

가브리엘라의 유물들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현재 본부인 비테보 근교에 위치한 비토르치아노의 트라피스트 성 요셉의 아내 수도원의 일치 경당에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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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Sources

The information in this article was derived mainly from the following sour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