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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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f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7일 (목) 00:31 판

에이사-(일본어: エイサー ())는 오키나와아마미군도에서 오봉 때 조상의 위안을 비는 등 제사적 목적으로 생겨난 전통 무용이다. 지역에 따라 난사-, 엔사-, 7월무(七月舞 (しちぐゎちもーい) 시치과치모-이[*], 닌부치마-이(念仏廻り (にんぶちまーい)) 등으로도 불린다[1]. 현대에는 소고와 사미센 등의 연주를 결합한 오키나와 대표의 전통예능이 되었다. 소-란보다도 앞서 오키나와 전섬 에이사-축제 등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이벤트가 이뤄졌으며, 지역 청년회나 대학교 별로 동아리가 조직돼 오키나와와 일본의 청년 등을 묶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2].

유래

에이사-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오봉에 현세로 돌아오는 조상의 영을 환송하기 위해, 남성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주며 돌아다니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많다[3].

한편 오키나와 왕국 시절 불교가 전파된 것을 근거로 보는 경우도 있다. 토호쿠 출신의 학승 타이츄-쇼-닌(袋中上人 (たいちゅうしょうにん))이 1603년부터 3년간 슈리에 머물며 정토종을 포교한 것을 계기로, 오키나와 왕가나 귀족을 중심으로 염불이 퍼졌다. 18세기 중반에는, 두타나 전례를 행하는 염불꾼(念仏屋 (にんぶちゃー))을 오봉에 불러 조상에게 공양하는 풍습이, 슈리의 거리에 존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현재의 에이사- 형식과 다르게, 염불가 등을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메이지 시기 이후 염불을 마을의 젊은이들이 대신 부르면서 서민들에게 에이사-가 보급되었다. 이후 본섬에서 오키나와 전체로 에이사-가 퍼지면서, 민요에 맞춰 춤추는 경우도 늘어났다. 요나구니 섬에는 1920년경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큰북을 쓰지 않고, 유카타를 입고 머릿수건을 쓰는 스타일이 주류를 이뤘다. 이렇게 되면서 1920년대쯤에 염불꾼이 사라지게 됐다[4].

연행

전통 방식

현대

참고문헌

  • 진필수 (2010년 1월). 오키나와(沖縄)의 전통예능 활성화와 소수민족 정체성의 행방: 에이사(エイサ—)의 사례. 《한국문화인류》 43 (1): 89~128.
  • (일본어) 遠藤美奈 (2019년 3월 31일). 戦前の沖縄における「エイサー」と 「盆踊り」の諸相-. 《沖縄芸術の科学》 (沖縄県立芸術大学附属研究所) 31: 59-75.
  • (일본어) 小林公江, 小林幸男 (1997년). 今帰仁エイサー-今泊・兼次・崎山の資料化を通して-. 《沖縄芸術の科学》 (沖縄県立芸術大学) 9: 7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