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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특히 인천의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을 가진 마을 전통이 인천 본토를 기준으로 [[옥골]] 같은 극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이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들어올 수 있었고, 그 강도도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1909년 개신교 선교분할|1909년의 선교분할]] 결과 인천지역은 대체로 감리교 지역이 되었다. |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특히 인천의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을 가진 마을 전통이 인천 본토를 기준으로 [[옥골]] 같은 극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이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들어올 수 있었고, 그 강도도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1909년 개신교 선교분할|1909년의 선교분할]] 결과 인천지역은 대체로 감리교 지역이 되었다. | ||
따라서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개신교가 인천광역시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이들이 지역의 새누리당 강세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ref>심지어 송영길 시장은 무교였지만 [[인천기독교연합회|인기연]]이 환영회 열어주고 이것저것 압력 넣고 하니까 개신교에 긍정적인 발언을 하고 그러는 수준이다.</ref> 개신교가 인천광역시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 ||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 ||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 ||
이런 이유로 인천 본토는 거의 기독교인이 아니면 무교고, 가끔씩 불교인, 유교인을 만나는 수준이며, 심지어 조계종의 한 연구소는 남인천과 북인천을 '포교가 취약한 지역'으로 인정할 지경이다<ref>{{기사 인용|url=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3847|출판사=불교포커스|저자=신혁진 기자|제목=경기택지개발 종교용지 온통 개신교‥불교는 ‘제로’|작성일자=2011-08-30|확인일자=2012-03-03}}</ref>. 심지어 개신교 쪽에서 이슬람교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면서 노력할 정도니 앞으로도 현재의 종교 지형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 |||
다만 인천지역의 개신교가 상당히 우파적인 만큼 다음세대가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무교인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관계로 향후 20-30년 이후 인천 시민의 종교현황이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 |||
== 정치 == | == 정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