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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토 : 좁게는 남구와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동구 지역(=원인천)을 의미하고[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kwyverns&no=2228780], 좀 더 넓어지면 여기에 연수구와 부평구가 추가되며, 좀 더 넓어지면 섬 지역이 아닌 육상 지역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가 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ity&no=257771]. 셋 중 어디를 쓸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 본토 : 좁게는 남구와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동구 지역(=원인천)을 의미하고[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kwyverns&no=2228780], 좀 더 넓어지면 여기에 연수구와 부평구가 추가되며, 좀 더 넓어지면 섬 지역이 아닌 육상 지역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가 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ity&no=257771]. 셋 중 어디를 쓸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 남인천 : [[인천광역시 남구|남구]]에서 분할된 [[인천광역시 남동구|남동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연수구]]를 포함하는 구역,
* 남인천 : [[인천광역시 남구|남구]]에서 분할된 [[인천광역시 남동구|남동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연수구]]를 포함하는 구역,
** 주안
** 송도 : 송도유원지 부근과 송도신도시로 대변되는 가상의 지역. 요즘은 후자가 많지만, 토백이들은 아마 전자도 포함해서 하나의 지역으로 생각할 것이다.  
** 송도 : 송도유원지 부근과 송도신도시로 대변되는 가상의 지역. 요즘은 후자가 많지만, 토백이들은 아마 전자도 포함해서 하나의 지역으로 생각할 것이다.  
* 동인천 : {{del|인천의 동쪽인줄 알았죠? [[유감!]] 서쪽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중구|중구]]와 [[인천광역시 동구|동구]]지역. 가장 먼저 개발되었지만 그만큼 옛날 건물이 많다. 다만 동구는 매립지를 잘 활용하고, 재개발 크리를 먹여 그나마 새로운 '진보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는 중.
* 동인천 : {{del|인천의 동쪽인줄 알았죠? [[유감!]] 서쪽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중구|중구]]와 [[인천광역시 동구|동구]]지역. 가장 먼저 개발되었지만 그만큼 옛날 건물이 많다. 다만 동구는 매립지를 잘 활용하고, 재개발 크리를 먹여 그나마 새로운 '진보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는 중.
** 영종 : 영종도도 중구에 속하지만 본토 중구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일단 같이 매립된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그리고 매립되지 않은 [[무의도]], [[실미도]]와 함께 하나의 뭉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다.
** 영종 : 영종도도 중구에 속하지만 본토 중구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일단 같이 매립된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그리고 매립되지 않은 [[무의도]], [[실미도]]와 함께 하나의 뭉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다.
* 북인천 : [[인천광역시 북구|북구]]에서 정확하게 [[경인고속도로]]로 분할된 [[인천광역시 부평구]]와 [[인천광역시
* 북인천 : [[인천광역시 북구|북구]]에서 정확하게 [[경인고속도로]]로 분할된 [[인천광역시 부평구|부평구]]와 [[인천광역시 계양구|계양구]] 지역.
** 부평 : 부평이라는 단어가 이 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50-60년대 시절에는 인천 택시와 부평 택시가 시 안에서도 별도의 조합으로 운영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계양
* 서인천 : 전통적으로 [[인천광역시 서구|서구]].
* 서인천 : 전통적으로 [[인천광역시 서구|서구]].
** 청라 : 서인천의 서부지역으로  
** 청라 : 서인천의 서부지역으로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다가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하나가 되면서 완전 상전벽해가 되었다. 안타깝게 청라로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가지 않는다.
** 검단 : 1995년 추가된 동네인데, 원래 면이 동으로 통합된 것이다 보니 그냥 하나의 지역으로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최근에는 남쪽 청라와 함께 한 묶음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 검단 : 1995년 인천으로 접수된 동네인데, 원래 면이 동으로 통합된 것이다 보니 그냥 하나의 지역으로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최근에는 남쪽 청라와 함께 한 묶음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군]] : 인천광역시가 맞는데 {{del|영종-신도-강화 연육교 건설 전까지는}} 본토에서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 곳. 억지분할이다보니 답이 없다.
*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군]] : 인천광역시가 맞는데 {{del|영종-신도-강화 연육교 건설 전까지는}} 본토에서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 곳. 억지분할이다보니 답이 없다.
* [[인천광역시 옹진군|옹진군]] : [[북도면]]과 [[영흥면]] 정도로 나뉜다. 최근 북도면의 인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 [[인천광역시 옹진군|옹진군]] : [[북도면]]과 [[영흥면]] 정도로 나뉜다. 최근 북도면의 인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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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가톨릭이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개항과 함께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쪽으로 먼저 들어왔기 때문.  
[[개신교]]와 가톨릭이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개항과 함께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쪽으로 먼저 들어왔기 때문.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특히 인천의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을 가진 마을 전통이 인천 본토를 기준으로 [[옥골]] 같은 극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이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들어올 수 있었고, 그 강도도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1909년 개신교 선교분할|1909년의 선교분할]] 결과 인천지역은 대체로 감리교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특히 인천의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을 가진 마을 전통이 인천 본토를 기준으로 [[옥골]] 등의 극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이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들어올 수 있었고, 그 강도도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는 산골인 문학동에 위치해 있었던 반면, 이후 도시 설립은 인천항지역에서 이루어졌는데, 인천항 지역에는 유교나 불교 문화권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로 최근 30-40년동안 인천광역시의 매립과 함께 새로운 인구들이 인천시로 이주하고, 또한 도심도 현재 인천시청이 있는 간석/구월동 지역쪽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구 구성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1960-70년대 부흥과 함께 개신교인 증가가 이루어지면서 개신교화가 심화되었다.


따라서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개신교가 인천광역시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이들이 지역의 새누리당 강세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ref>심지어 송영길 시장은 무교였지만 [[인천기독교연합회|인기연]]이 환영회 열어주고 이것저것 압력 넣고 하니까 개신교에 긍정적인 발언을 하고 그러는 수준이다.</ref> 개신교가 인천광역시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1909년 개신교 선교분할|1909년의 선교분할]] 결과 인천지역은 대체로 감리교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다시 장로교가 활동하기 시작하고, 목회자들의 자유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감리교와 장로교의 분포가 균일한 상태이다.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이런 이유로 인천 본토는 거의 기독교인이 아니면 무교고, 가끔씩 불교인, 유교인을 만나는 수준이며, 심지어 조계종의 한 연구소는 남인천과 북인천을 '포교가 취약한 지역'으로 인정할 지경이다<ref>{{기사 인용|url=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3847|뉴스=불교포커스|저자=신혁진 기자|제목=경기택지개발 종교용지 온통 개신교‥불교는 ‘제로’|작성일자=2011-08-30|확인일자=2012-03-03}}</ref>. 심지어 개신교 쪽에서 이슬람교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면서 노력할 정도니 앞으로도 현재의 종교 지형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인천지역의 개신교가 상당히 우파적인 만큼 다음세대가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무교인이나 가톨릭인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관계로 향후 20-30년 이후 인천 시민의 종교현황이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 정치 ==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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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는 대한민국 [[철도]]의 첫 시점이었던 [[경인선]]이 1899년 처음으로 개통된 지역이다. 그러나 경부선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원래 인천부터 노량진, 그리고 서울역을 잇는 하나의 본선으로 여겨졌던 경인선은 서울역-구로 구간을 경부선에 빼앗기고 구로에서 분기되는 지선으로 전락되었다. 이후 경인선은 [[1974년]] [[8월 15일]] 복선 전철화가 이루어진 이래, [[1991년]] [[1월]]([[부평역|부평]]-[[용산역|용산]] 구간)부터 [[2005년]] [[12월]]([[동인천역|동인천]]-[[주안|주안역]] 구간)까지 복복선화가 진행되었지만, 경인선 이외 인천과 서울간을 잇는 철도는 2007년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고, 이후 서울역 연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무하였다. 그나마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면서 청라권, 북인천권의 서울간 교통은 매우 개선되었으나, 아직까지 경인선을 제외하고 본토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없는 실정이다. {{del|인천에 누군가가 [[사철]]을 뚫어준다면 본격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 분위기}} 하지만 [[2013년]] [[서울지하철 7호선|7호선]] 연장이 [[부평구청역]]까지 이어졌고, 이후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후 [[석남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천광역시는 대한민국 [[철도]]의 첫 시점이었던 [[경인선]]이 1899년 처음으로 개통된 지역이다. 그러나 경부선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원래 인천부터 노량진, 그리고 서울역을 잇는 하나의 본선으로 여겨졌던 경인선은 서울역-구로 구간을 경부선에 빼앗기고 구로에서 분기되는 지선으로 전락되었다. 이후 경인선은 [[1974년]] [[8월 15일]] 복선 전철화가 이루어진 이래, [[1991년]] [[1월]]([[부평역|부평]]-[[용산역|용산]] 구간)부터 [[2005년]] [[12월]]([[동인천역|동인천]]-[[주안|주안역]] 구간)까지 복복선화가 진행되었지만, 경인선 이외 인천과 서울간을 잇는 철도는 2007년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고, 이후 서울역 연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무하였다. 그나마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면서 청라권, 북인천권의 서울간 교통은 매우 개선되었으나, 아직까지 경인선을 제외하고 본토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없는 실정이다. {{del|인천에 누군가가 [[사철]]을 뚫어준다면 본격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 분위기}} 하지만 [[2013년]] [[서울지하철 7호선|7호선]] 연장이 [[부평구청역]]까지 이어졌고, 이후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후 [[석남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1995년을 기해 폐지된 [[수인선]]은 [[2012년]] 우선 [[송도역|송도]]-[[오이도역|오이도]]역 구간이 개통되며 재운용에 들어갔고, 이후 [[인천역]]까지 연장 공사중이다.
한편 1995년을 기해 폐지된 [[수인선]]은 [[2012년]] 우선 [[송도역|송도]]-[[오이도역|오이도]]역 구간이 개통되며 재운용에 들어갔고, 이후 [[인천역]]까지 연장되었다. 또한 2016년 8월에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었는데, 좋은 전철인지 안 좋은 전철인지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철도가 되었다.


=== 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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