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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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f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4월 10일 (토) 03:21 판
성서연구생운동의 주요 분열과정

성서연구생운동(영어: Bible Student movement, 聖書硏究生運動)은 천년주의[1], 회복주의 신앙을 주장한 찰스 테일즈 러셀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구성한 기독교 운동이다. 현재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성서연구생, 국제성서연구생, 연합성서연구생, 독립성서연구생 등으로 부른다. 이 운동의 기원은 1881년 팬실바니아주에 설립된 시온의 워치타워책자협회Zion's Watch Tower Tract Society의 설립과 함께 형성되었다. 이 운동에서 유래된 가장 큰 교파는 여호와의 증인 이지만, 현재 성서연구생운동은 통합되어 있지 않고 있는데, 이는 1917년 러셀의 사망 이후 1931년 여호와의 증인 형성 직전까지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가 러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1909년부터 1932년 사이에 워치타워협회에 속해 있던 성서연구생의 회중들이 협회와 단절하고 다수의 분파를 만들었다[2][3]. 가장 큰 분열은 1917년 러셀이 사망한지 두 달 만에 조셉 프랭클린 러더포드가 제2대 워치타워협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러더포드가 4명의 이사를 교체하고, 러셀의 유고를 다듬은 〈종말을 고한 비밀〉The Finished Mystery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러더포드가 1925년을 종말 날자로 예언했으나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가고, 지속적으로 교리를 변개하고 조직을 중앙집권형으로 바꿔 나가면서, 워치타워협회와 연합했던 수만 명의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disillusion 회중을 떠나갔다[2]. 전직 증인이었던 윌리암 슈넬William Schnell은 1919년 협회와 연합되어 있던 기존 성서연구생 중 3/4가 협회를 떠났다고 주장한다[3][4]. 1930년 러더포드는 “협회에서 빠진 사람들의 총수가 … 상당히 많다”고 발언하였는데[5], 실제로 1925년 90,434명에 달했던[6] 기념식 참석자수가 3년후인 1928년에는 17,380명으로 격감했다[7].

1918년부터 1929년 사이, 몇몇 신도들이 ‘굳게 선 성경연구생’Stand Fast Movement, ‘목양성서협회’the Pastoral Bible Institute, ‘평신도가정선교운동’the Laymen's Home Missionary Movement, ‘새벽성서연구생협회’Dawn Bible Students Association 등의 독립 교단을 만들어 나갔다. 이들 집단은 러셀을 진정으로 지지한다고 믿는 보수신앙 집단부터 신앙을 가진 이후 러셀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믿는 자유적 집단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러더포드의 운동에 대한 팩션들이 워치타워협회의 지배를 유지시켰고, 러더포드는 1931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명을 바꿨다. 20세기 말,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는 전세계에서 600만 명 정도의 회원을 가진 반면, 다른 독립성서연구모임의 수는 7만 5천명이 못 됐다.

배경

1869년에 찰스 러셀은 천년주의 영향을 받은[8] 재림교회 설교자인 요나스 웬델Jonas Wendell의 설교를 들은 후 조지 스테트슨George Stetson이 이끄는 펜실바니아주 앨러게니 지역의 재림성경공부모임에 참여하는데, 이 과정에서 윌리엄 밀러와 오래된 친구이자 성경모임의 준회원인 조지 스톨스George Storrs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876년 초에 러셀은 그리스도가 1874년에 비가시적으로 재림하셨다고 믿는 재림주의 설교자인 넬슨 H. 바버Nelson H. Barbour와 존 H. 패튼을 만났다. 러셀은 바버에게 개인 자금을 지원하고, 이들이 출간하는 〈아침 전령〉Herald of the Morning의 공동편집자가 되었다. 1877년 이들은 함께 바버의 주도로 〈세 세상과 이 세상의 추수〉Three Worlds and the Harvest of This World를 펴냈는데[9], 2,520년에 달하는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날 것으로 예측한 이 책의 주요 개념은 지금도 성서연구생운동과 여호와의 증인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책은 많은 재림교인들의 믿음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돌아오셔도 지구가 불타지 않고, 아담부터 태어난 전 인류가 마침내 전부 부활해 순종한다면 온전한 영생을 얻을 기회를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모든 ‘성도’들이 1878년 4월에 휴거할 것이라는 예측도 드러냈다[8].

러셀은 그의 성경 연대기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1877년 예수께서 아마겟돈 전쟁 이전에 비가시적으로 재림하신다고 가르치는 책자인 〈주의 재림의 목적과 방법〉Object and Manner of Our Lord's Return[10]을 5만 부 발간했다. 1878년에 그는 말세가 1799년에 시작됐으며, 예수님께서 비가시적으로 1874년에 재림하셨고, 1878년에 천국에서 대관하셨다는 재림주의 관점을 가르치고 있었다. 러셀은 또한 1878년에 ‘잠자던 성도’(그 때까지 죽었던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과 불경건한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즉 ‘바벨론의 멸망’이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1914년 10월에는 추수기가 마무리되면서, 전세계에 무정부 상태가 시작되고, 문명 사회가 둔화되고 파괴되는 것을 통해 아마게돈이 시작될 터였다.

1879년 러셀은 대속 신조에 대한 의견 차이로 바버와 결별했으며, 이때부터 월간 잡지인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 임재의 전령〉Zion's Watch Tower and Herald of Christ's Presence(현재의 〈파수대〉)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자기 독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출판물을 통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1879-80년 〈시온의 파수대〉 독자들이 미국 7개주에서 30곳의 성경공부모임을 구성했으며, 각 회중은 1명의 장로를 선출했다. 1880년 러셀은 회중을 순회하며 6시간의 공부모임을 통해 회중에 맞게 성경공부를 실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8][11].

워치타워협회 설립

1881년 윌리엄 헨리 콘리William Henry Conley를 초대 회장으로, 책자, 논문, 신앙서적과 성경을 배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온의 워치타워책자협회가 비법인행정기관으로서 설립됐으며, 러셀은 서기로 임명됐다. 3년 후 펜실바니아주에 협회가 등기되면서 러셀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1892년 〈시온의 파수대〉는 격주간 발행으로 전환했다.

만국성서연구회

1910년, 러셀은 전세계 성서공부모임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서 국제성서연구생협회, 또는 만국성서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는 주의 섭리로, 주의 백성 누구에게나 적절하며, 모든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을 이름 - 이 글의 첫머리에 놓인 제목(IBSA)을 생각해 냈다고 믿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의 감정과 노력을 명확하게 표상합니다. 우리는 성서연구생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와 함께 연구하도록 초청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복되고 하나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따라서 작은 학급이든 큰 학급이든 이 반대불가능한 표현style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신문의 광고 칼럼에 이를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곳의 친구들이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어떻게 그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12]

러셀은 이 협회가 워치타워성경책자협회를 대표하는 설교자들의 모임 속 사람들에 의해 지도되고 관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치타워협회 출판물을 사용하는 모든 성서연구생 학급은 모임을 협회와 동일하게 여길 수 있었으며, 그들의 모임과 관련해 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증을 받았다. 또한 성경연구생들의 지역대회를 광고하거나 진행할 때도 이 이름이 사용되었다[12].

1차 분열

1905년에 전 루터회 목사이자 순회설교자 중 한명이었던 폴 SL 존슨은 러셀에게 그의 새언약에 대한 교리가 완벽한 변화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존슨에 따르면 1880년까지 러셀은 기름부음받은 144,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올라가는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새언약이 시작된다고 가르쳤지만, 1881년부터 그는 이미 새언약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다. 러셀은 이 질문을 재고한 후 1907년 1월 〈파수대〉에 1880년 관점을 확인하는 몇 개의 기사를 발표했다. 이 기사에서 러셀은 ‘새 언약은 전적으로 다가올 세대의 것이며’, 교회에는 중보자가 없으며, 그리스도는 ‘변호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144,000명을 달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천년왕국 기간동안 ‘공동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해 보조 중보자가 된다고 가르쳤다. 기사 발표후, 1909년 10월 24일, 협회 서기와 감사를 역임한 후 멜버른에 위치한 호주지부 감독자로 일하던 어니스트 C 헤닝거스는 러셀에게 공개항의편지를 보내 이 가르침을 폐기할 것을 설득하고, 성경연구생들에게는 이 가르침의 적합성을 따질 것을 요청했다. 러셀이 이를 거부하자, 헤닝거스와 멜버른 회중의 대부분이 러셀을 떠나 새로운 새 언약 협회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1만 명 이상의 성경연구생들이 협회를 떠났다. 새언약 신자들을 형성했다. 자신들을 자유성경연구생으로 부른 집단들은 〈왕국 필사자〉Kingdom Scribe 잡지를 1975년까지 출간했다. 현재 이 그룹은 베레아 성서연구생 교회Berean Bible Students Church 로 알려져 있다.


리더십 분쟁과 결과

현재의 분파들

여호와의 증인

이 부분의 본문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여러 이유로 분파한 모임들도 여러 곳 있다.

연합성서연구생

자유성서연구생

평신도가정선교운동

  1. Crompton, Robert (1996). 《Counting the Days to Armageddon》. Cambridge: James Clarke & Co, 12쪽. ISBN: 0-227-67939-3
  2. 2.0 2.1 Penton (1997), pp. 43-62.
  3. 3.0 3.1 Rogerson (1969), p. 52.
  4. Schnell, William J (1956). 《Thirty Years a Watchtower Slave》. Grand Rapids: Baker, 141–142쪽 “In order to cover up the inaccuracy of this assumption, as is evidenced by the subsequent need for purging 75 percent of all Bible Students between the years 1919 to 1931 for failure to come around to Watchtower leadership, a scapegoat had to be found.”
  5.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1930년 11월 15일). 《The Watch Tower》, 342쪽
  6. 워치타워성경책자협회 (1958). 《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Your Will Be Done on Earth)》, 337
  7. Dawn Bible Students Association (1946). 《When Pastor Russell Died》, 6–16쪽
  8. 8.0 8.1 8.2 Penton (1997), pp. 13-46.
  9. Barbour & Russell (1877).
  10. Russell, CT (1877). 《The Object and Manner of Our Lord's Return》. Herald of the Morning
  11. Rogerson (1969), p. 12.
  12. 12.0 12.1 Russell, Charles T (1910년 4월 1일). 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 119.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