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가브리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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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box saint
|name=Blessed Maria Gabriella Sagheddu, [[Trappist|O.C.S.O.]]
|image= Maria Gabriella Sagheddu 01.jpg
|caption = The Blessed Maria Gabriella in her native [[Dorgali|Dorgalese]] dress
|birth_date= 17 March 1914
|death_date=23 April 1939
|birth_place=[[Dorgali]], [[Sardinia]], [[Kingdom of Italy]]
|death_place=Trappistine Monastery, [[Grottaferrata]], [[Province of Rome|Rome]], Italy
|titles=Nun
|feast_day=April 22
|beatified_date=25 January 1983
|beatified_place=[[Basilica of Saint Paul Outside the Walls]], [[Rome]], Italy,
|beatified_by=[[Pope John Paul II]]
|patronage=[[Ecumenism]]
|major_shrine=Chapel of Unity, Monastery of Our Lady of St. Joseph, [[Vitorchiano]], [[Province of Viterbo|Viterbo]], Italy
}}
'''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llang|it|Maria Gabriella Sagheddu}}, [[1914년]] [[3월 17일]] ~ [[1939년]])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소속된 이탈리아인 [[수녀]] 였으며, 25살의 나이에 그로타페라타 수녀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1983년]] [[교회일치운동|교회일치]]에 대해 일생동안 베푼 영적 공헌을 인정받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가톨릭 일치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됐다.
'''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llang|it|Maria Gabriella Sagheddu}}, [[1914년]] [[3월 17일]] ~ [[1939년]])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소속된 이탈리아인 [[수녀]] 였으며, 25살의 나이에 그로타페라타 수녀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1983년]] [[교회일치운동|교회일치]]에 대해 일생동안 베푼 영적 공헌을 인정받아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가톨릭 일치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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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의 여동생이 죽고 나서, 깊은 연민을 느낀 그녀는 18살이 되는 해에 [[아지오네 카톨리카]]에 가입했다<ref name=weddell/>. 그녀는 지역 젊은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가르치고, 지역의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도 생활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가톨릭 교리서를 손에 지도봉을 들고 가르쳤지만, 어느날 지역 사제가 그의 손에서 지도봉을 빼앗고, "지도봉이 아니라 인내로 무장하십시오"라는 쪽지를 손에 쥐어주자, 마리아는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 지도방식을 변화시켰다.
이후 그의 여동생이 죽고 나서, 깊은 연민을 느낀 그녀는 18살이 되는 해에 [[아지오네 카톨리카]]에 가입했다<ref name=weddell/>. 그녀는 지역 젊은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가르치고, 지역의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도 생활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가톨릭 교리서를 손에 지도봉을 들고 가르쳤지만, 어느날 지역 사제가 그의 손에서 지도봉을 빼앗고, "지도봉이 아니라 인내로 무장하십시오"라는 쪽지를 손에 쥐어주자, 마리아는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 지도방식을 변화시켰다.


20세에, 사게두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 있는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고<ref name=vitorchiano/> '마리아 가브리엘라'라는 수녀명을 받았다. 이 당시 수도원의 [[아뻬스]]는  마리아 피아 굴리니 O.C.S.O. 신모로, 그녀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아빠스]] [[폴 쿠투리에]]의 노력의 성과로 형성된 [[에큐메니즘]]에 열성을 쏟았고, 그 분위기가 수도원 전반에 흘렀다<ref name=weddell/>, 이 목적에 헌신해, 그녀는 자신을 1938년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에 [[기독교회]]의 [[일치]]를 위한 영적 제물로 바쳤다. 그 헌신 이후 그녀는 폐렴을 동반한 병에 빠졌으며, 15개월동안 앓은 결과, 1939년 4월 23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참고로, 그 주의 주일 [[성서공과]]의 [[복음]]에는 [[요한복음 10장#16절|요한복음 10장 16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20세에, 사게두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 있는 [[그로타페라타]](Grottaferrata)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고<ref name=vitorchiano/> '마리아 가브리엘라'라는 수녀명을 받았다. 이 당시 수도원의 [[아뻬스]]는  마리아 피아 굴리니 O.C.S.O. 신모로, 그녀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아빠스]] [[폴 쿠투리에]]의 노력의 성과로 형성된 [[에큐메니즘]]에 열성을 쏟았고, 그 분위기가 수도원 전반에 흘렀다<ref name=weddell/>, 이 목적에 헌신해, 그녀는 자신을 1938년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에 [[기독교회]]의 [[일치]]를 위한 영적 제물로 바쳤다. 그 헌신 이후 그녀는 폐렴을 동반한 병에 빠졌으며, 15개월동안 앓은 결과, 1939년 4월 23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참고로, 그 주의 주일 [[성서공과]]의 [[복음]]에는 [[요한복음 10장#16절|요한복음 10장 16절]]이 포함되어 있었다.


== 영성 ==
== 영성 ==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녀를 당신과의 연합으로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감사에 감동을 받았다. 다른 가톨릭 성인들로 알려진 사람들과 같이, 그녀는 하나님의 의지 앞에 신뢰함으로 자기의 완전한 부인을 통해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찾았다.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녀를 당신과의 연합으로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감사에 감동을 받았다. 다른 가톨릭 성인들로 알려진 사람들과 같이, 그녀는 하나님의 의지 앞에 신뢰함으로 자기의 완전한 부인을 통해 불안으로부터 자유를 찾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칙 '[[Ut unum sint|하느님은 사랑이시다]]({{llang|la|Ut unum sint}})' 에서 그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칙 '[[Ut unum sint|하나되게 하소서]]({{llang|la|Ut unum sint}})' 에서 그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인용문|일치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치 부족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깊은 개인적 대화 속에서, 일치에 대한 관심이 제외될 수 없습니다. … 이 의무를 재강화하기 위해 나는 [[보편 교회]]의 신도들 앞에 [[1983년]]  [[1월 25일]]에 내가 시복한 트라피스트 수녀, 일치의 복녀 마리아 가브리엘라라는 내가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을 설정했습니다.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라는 [[성소]]의 부름을 받아, [[요한복음]]  [[요한복음 17장|17장]]에 중심한 묵상과 기도에 그의 삶을 헌신하고, 그의 삶을 그리스도인 일치에 바쳤습니다. …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의 사례는 교훈적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일치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특별한 시간, 상황, 또는 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기도는 모두,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모델로서 제시됩니다.<ref>[http://www.catholicnewsagency.com/document.php?n=147 John Paul II, "Ut Unim Sint", May 25, 1995, Catholic News Agency]</ref>}}
{{인용문|일치를 위한 기도는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치 부족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깊은 개인적 대화 속에서, 일치에 대한 관심이 제외될 수 없습니다. … 이 의무를 재강화하기 위해 나는 [[보편 교회]]의 신도들 앞에 [[1983년]]  [[1월 25일]]에 내가 시복한 트라피스트 수녀, 일치의 복녀 마리아 가브리엘라라는 내가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을 설정했습니다.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라는 [[성소]]의 부름을 받아, [[요한복음]]  [[요한복음 17장|17장]]에 중심한 묵상과 기도에 그의 삶을 헌신하고, 그의 삶을 그리스도인 일치에 바쳤습니다. … 마리아 가브리엘라 자매의 사례는 교훈적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일치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특별한 시간, 상황, 또는 시간[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기도는 모두,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모델로서 제시됩니다.<ref>[http://www.catholicnewsagency.com/document.php?n=147 John Paul II, "Ut Unim Sint", May 25, 1995, Catholic News Agency]</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