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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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 제정 ===
=== 제정 ===
이 선언은 1950년대 냉전으로 인해 보수정권과 공산당 간의 정치적 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피의 메이데이사건]]으로 인해 [[파괴활동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치안관서에서 도서관에 대한 간섭이 시작되려고 하던 때 생겨났다. 이미 2차대전 중이던 1942([[소화]] 17)년에 도서관 대상 도서 삭제 등의 경험을 겪은 도서관 관계자들에게는 패전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 가운데 공안 관계자들에 의한 열람표의 조사, 도서관 내 공간 사용단체의 조사, 지방교육청에 의한 구입도서에 대한 간섭 등 부당한 요구가 쏟아지면서 ‘도서관의 저항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가고 있던 중, 1952년 2월 치치부시립도서관에서 [[나카지마 켄조-]]({{ja-y2|中島健蔵|なかじまけんぞう}})의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무단으로 기획자의 책상을 조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사이타마현 공공도서관협회는 11월 개최한 워크숍에서 사이타마현립도서관 부관장이었던 쿠사노 아사나({{ja-y2|草野 正名|くさの あさな}}) 등의 제안자들에 의해 《일본도서관헌장》을 제정하도록 제안하기로 결의한다{{sfn|安里|ウエルトハイマー|根本|2011}}.
이 선언은 1950년대 냉전으로 인해 보수정권과 공산당 간의 정치적 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피의 메이데이사건]]으로 인해 [[파괴활동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치안관서에서 도서관에 대한 간섭이 시작되려고 하던 때 생겨났다. 이미 2차대전 중이던 1942([[소화]] 17)년에 도서관 대상 도서 삭제 등의 경험을 겪은 도서관 관계자들에게는 패전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 가운데 공안 관계자들에 의한 열람표의 조사, 도서관 내 공간 사용단체의 조사, 지방교육청에 의한 구입도서에 대한 간섭 등 부당한 요구가 쏟아지면서 ‘도서관의 저항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가고 있던 중이었다.


이후 12월 9일 사이타마현 공공도서관장인 니라츠카 이치사부로-({{ja-y2|韮塚 一三郎|にらつか いちさぶろう}})가 미국의 《도서관 권리장전》(Library bill of Rights)을 바탕으로 한 헌장 제정을 공식 제안하는 문서를 일본도서관협회 아리야마 타카시({{ja-y2|有山崧|ありやま たかし}}) 사무국장에게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이후 일본도서관협회는 헌장위원회를 결성한 후 니라츠카 관장, 사토- 타다요시({{ja-y2|佐藤 忠恕|さとう ただよし}}) 무사시노시립도서관장, 아리야마 국장을 중심으로 위원회안을 작성하고 《도서관잡지》 1953년 11월호에서 보고한다{{sfn|安里|ウエルトハイマー|根本|2011}}. 이후 1954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전국도서관대회에서 격론 후에 제정이 결정되어 마지막 날 개최된 총회에서 제정되었다.
1952년도 5월 개최된 전국도서관대회에서 파괴활동방지법에 대한 반대 결의 요구가 있었으나 아리야마 타카시({{ja-y2|有山崧|ありやま たかし}})) 협회 사무국장의 반대로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사무국은 《도서관잡지》를 통해 ‘도서관과 중립’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Sfn|변우열|2002|p=17-18}}.
 
한편 이 논의에 앞서 1952년 2월 치치부시립도서관에서 [[나카지마 켄조-]]({{ja-y2|中島健蔵|なかじまけんぞう}})의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무단으로 기획자의 책상을 조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사이타마현 공공도서관협회는 11월 쿠마모토에서 개최한 워크숍에서 사이타마현립도서관 부관장이었던 쿠사노 아사나({{ja-y2|草野 正名|くさの あさな}}) 등의 제안자들에 의해 《일본도서관헌장》을 제정하도록 제안하기로 결의한다{{sfn|安里|ウエルトハイマー|根本|2011}}.
 
이후 12월 9일 사이타마현 공공도서관장인 니라츠카 이치사부로-({{ja-y2|韮塚 一三郎|にらつか いちさぶろう}})가 미국의 《도서관 권리장전》(Library bill of Rights)을 바탕으로 한 헌장 제정을 공식 제안하는 문서를 일본도서관협회 아리야마 사무국장에게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이후 1953년도 협회 총회에서 《도서관헌장》의 제정과 관련해 논의 및 표결 결과 제정 의견이 많아{{Sfn|변우열|2002|p=19}}, 일본도서관협회는 헌장위원회를 결성한 후 니라츠카 관장, 사토- 타다요시({{ja-y2|佐藤 忠恕|さとう ただよし}}) 무사시노시립도서관장, 아리야마 국장을 중심으로 위원회안을 작성하고 《도서관잡지》 1953년 11월호에서 보고한다{{sfn|安里|ウエルトハイマー|根本|2011}}. 이후 1954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된 전국도서관대회에서 첫날 보고가 이뤘으나 결의가 미뤄진 이후, 마지막 날 개최된 총회에서 ‘여러 관계 부분과 협력하여 저항한다’라고 된 부분이 수정되어 제정에 이르렀다{{Sfn|변우열|2002|p=20}}.


===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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