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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 생애 == | ||
말루엔다는 [[발렌시아주]] [[샤비바]]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복사로 활동했으며 [[1582년]] 롬바이의 도미니코 수도원에 입회한 이후, 교육을 지속해 양성 이후에도 철학, 신학 강사로 활동한다. [[1600년]] 그는 [[체사레 바로니오]] 추기경의 작품인 [[교회 연대기]]를 읽고 비평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추기경은 편지를 읽고 그의 박식함과 능력에 반해 당시 수도회 [[총장]]인 예로니모 자비에르에게 요청해 그를 로마로 소환한다. 로마로 가던 중 [[산타마리아 소프라미네르바 성당|산타마리아 소프라미네르바 수녀원]]에서 [[이시도로 알리아가]]를 만나 평생 친구가 된다. [[1601년]] 로마로 올라온 그는 바로니오 추기경의 고문으로서 활동했으며, 동시에 총장의 지시로 예식서 개정, [[도미니코회]] 회칙 개정, 순교사, 수도희 연대기 바르시첼리의 [[금서 목록]] 주석에도 나섰다. 이 논고들은 작성되는 즉시 곧바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이와 별개로 《적그리스도 6권》(Antichristo libri XI, 1604년), 《천국의 기쁨》(De paradiso voluptatis, 1605년)를 저술했다. | |||
[[1608년]] 스페인으로 돌아온 | [[1608년]] [[5월 8일]] 개최된 도미니코회 총회에서 말루엔다는 신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아라곤 지방의 지역 책임자로 임명받는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말루엔다는 [[구약성경]]의 라틴어 재번역과 주석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히브리어 직역을 통한 라틴어 말씀 정립을 수행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과 함께 [[에스겔서]] [[에스겔서 16장#16|16, 16]]에서 멈추었다. 그의 유고는 [[1650년]] [[리옹]]에서 《성경 주석과 히브리 말씀 새 직역》({{llang|la|Commentaria in S. Scripturam, una cum nova de verbo in verbum ex hebraeo translation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
== 성경 번역 == | == 성경 번역 == | ||
말루엔다역의 번역례([[시편 23편]])는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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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 불가타역 || | ! 절 || 불가타역 || 말루엔다역<ref>4권 65쪽</ref> || 한국어 (엘리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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