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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인천의 역사는 확장과 매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개항 이후 인천의 역사는 확장과 매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이후 1960년대부터는 주안염전이 폐지되고 [[수출 4공단]]과 [[수출 5·6공단]]이 들어섰으며, 공업 확장에 따라 남동구 남서부 지역에 [[ | 이후 1960년대부터는 주안염전이 폐지되고 [[수출 4공단]]과 [[수출 5·6공단]]이 들어섰으며, 공업 확장에 따라 남동구 남서부 지역에 [[남동공단]]이 설립되는 등 | ||
한편 이 때부터 인천광역시 남구의 | |||
=== 직할시 체제 === | |||
1981년 인천은 드디어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 |||
한편 도 | |||
=== 1995 : 인천의 리즈시절 === | === 1995 : 인천의 리즈시절 === | ||
1995년은 지방자치제 시행과 동시에 인천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이다. | |||
우선 3월 1일부로 인천광역시 구역이 대폭 확대됨과 동시에 대형 구 분할이 있었다. 북구가 정확하게 경인고속도로를 사이로 쪼개져 버리고, 남구는 문학산을 사이로 이남이 연수구로 분리되어 버리면서 망조를 타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경기도 강화군과 옹진군이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ref>옹진군청이 애초에 인천 본토에 있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강화도는 다소 놀라운 결과였다.</ref>. | |||
=== 안상수 시장의 인천 말아먹기 === | === 안상수 시장의 인천 말아먹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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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는 그나마 잘 했다고 하지만, 안상수 시 | 송도는 그나마 잘 했다고 하지만, 안상수 시 | ||
=== 복구 과정 === | 특히 [[월미은하레일]]은 대규모 돈 낭비 사례로도 꼽힌다. | ||
=== 송영길의 복구 과정 === | |||
안상수 시장이 만들어 놓은 14조 빚을 뒤로 하고, 송영길 시장이 당선되었다. | |||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사실상 송영길 시장이 재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 참고로 현재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에서 맞설 후보가 마땅치 않고, 송영길 시장의 시정활동도 사실상 송영길 시장이 재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 ||
== 심리적 구분 == | == 심리적 구분 == | ||
인천광역시야 8구 2군으로 | 인천광역시야 8구 2군으로 총 10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 인천 시민의 심리적인 분할은 전혀 다르다. | ||
* 본토 : 좁게는 남구와 영종도를 제외한 중구, 동구 지역(=원인천)을 의미하고[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kwyverns&no=2228780], 좀 더 넓어지면 여기에 연수구와 부평구가 추가되며, 좀 더 넓어지면 섬 지역이 아닌 육상 지역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가 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ity&no=257771]. 셋 중 어디를 쓸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 |||
* 남인천 : [[인천광역시 남구|남구]]에서 분할된 [[인천광역시 남동구|남동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연수구]]를 포함하는 구역, | * 남인천 : [[인천광역시 남구|남구]]에서 분할된 [[인천광역시 남동구|남동구]]와 [[인천광역시 연수구|연수구]]를 포함하는 구역, | ||
** 송도 : | ** 주안 | ||
** 송도 : 송도유원지 부근과 송도신도시로 대변되는 가상의 지역. 요즘은 후자가 많지만, 토백이들은 아마 전자도 포함해서 하나의 지역으로 생각할 것이다. | |||
* 동인천 : {{del|인천의 동쪽인줄 알았죠? [[유감!]] 서쪽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중구|중구]]와 [[인천광역시 동구|동구]]지역. 가장 먼저 개발되었지만 그만큼 옛날 건물이 많다. 다만 동구는 매립지를 잘 활용하고, 재개발 크리를 먹여 그나마 새로운 '진보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는 중. | * 동인천 : {{del|인천의 동쪽인줄 알았죠? [[유감!]] 서쪽이었습니다!}} [[인천광역시 중구|중구]]와 [[인천광역시 동구|동구]]지역. 가장 먼저 개발되었지만 그만큼 옛날 건물이 많다. 다만 동구는 매립지를 잘 활용하고, 재개발 크리를 먹여 그나마 새로운 '진보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는 중. | ||
** | ** 영종 : 영종도도 중구에 속하지만 본토 중구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일단 같이 매립된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그리고 매립되지 않은 [[무의도]], [[실미도]]와 함께 하나의 뭉치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다. | ||
* 북인천 : | * 북인천 : [[인천광역시 북구|북구]]에서 정확하게 [[경인고속도로]]로 분할된 [[인천광역시 부평구|부평구]]와 [[인천광역시 계양구|계양구]] 지역. | ||
** 부평 : 부평이라는 단어가 이 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50-60년대 시절에는 인천 택시와 부평 택시가 시 안에서도 별도의 조합으로 운영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
** 계양 | |||
* 서인천 : 전통적으로 [[인천광역시 서구|서구]]. | * 서인천 : 전통적으로 [[인천광역시 서구|서구]]. | ||
** 청라 : | ** 청라 : 서인천의 서부지역으로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다가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하나가 되면서 완전 상전벽해가 되었다. 안타깝게 청라로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가지 않는다. | ||
** 검단 : 1995년 | ** 검단 : 1995년 인천으로 접수된 동네인데, 원래 면이 동으로 통합된 것이다 보니 그냥 하나의 지역으로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최근에는 남쪽 청라와 함께 한 묶음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 ||
*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군]] : 인천광역시가 맞는데 {{del|영종-신도-강화 연육교 건설 전까지는}} 본토에서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 곳. 억지분할이다보니 답이 없다. | * [[인천광역시 강화군|강화군]] : 인천광역시가 맞는데 {{del|영종-신도-강화 연육교 건설 전까지는}} 본토에서 경기도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 곳. 억지분할이다보니 답이 없다. | ||
* [[인천광역시 옹진군|옹진군]] : [[북도면]]과 [[영흥면]] | * [[인천광역시 옹진군|옹진군]] : [[북도면]]과 [[영흥면]] 정도로 나뉜다. 최근 북도면의 인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 ||
** [[서해 5도]] : 백령도, 대·소 연평도가 대표적이며, 북괴 주요 도발대상이 되는 그 곳이 맞다. | ** [[서해 5도]] : 백령도, 대·소 연평도가 대표적이며, [[북괴]]의 주요 도발대상이 되는 그 곳이 맞다. | ||
** 그리고 전쟁의 섬, [[굴업도]] | ** 그리고 전쟁의 섬, [[굴업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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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가톨릭이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개항과 함께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쪽으로 먼저 들어왔기 때문. | [[개신교]]와 가톨릭이 상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개항과 함께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쪽으로 먼저 들어왔기 때문. | ||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특히 인천의 확장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기존 불교나 유교, 민속신앙을 가진 마을 전통이 인천 본토를 기준으로 [[옥골]] 등의 극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이 기반 위에서 기독교 선교가 다른 곳보다 먼저 들어올 수 있었고, 그 강도도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는 산골인 문학동에 위치해 있었던 반면, 이후 도시 설립은 인천항지역에서 이루어졌는데, 인천항 지역에는 유교나 불교 문화권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로 최근 30-40년동안 인천광역시의 매립과 함께 새로운 인구들이 인천시로 이주하고, 또한 도심도 현재 인천시청이 있는 간석/구월동 지역쪽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구 구성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1960-70년대 부흥과 함께 개신교인 증가가 이루어지면서 개신교화가 심화되었다. | ||
따라서 인천 개신교는 인천을 '''[[복음의 관문]]'''이라고 하여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100주년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탑교회|그걸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지는 등]] 개신교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인천기독교신문]]과 [[연합기독뉴스]]라는 지역 대상 개신교 신문이 두개나 있는데다, 이들이 지역의 새누리당 강세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시장 선거 당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교라도 개신교 교회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ref>심지어 송영길 시장은 무교였지만 [[인천기독교연합회|인기연]]이 환영회 열어주고 이것저것 압력 넣고 하니까 개신교에 긍정적인 발언을 하고 그러는 수준이다.</ref> 개신교가 인천광역시 시민들의 삶에 있어서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 |||
[[1909년 개신교 선교분할|1909년의 선교분할]] 결과 인천지역은 대체로 감리교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다시 장로교가 활동하기 시작하고, 목회자들의 자유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감리교와 장로교의 분포가 균일한 상태이다. | |||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 인천 가톨릭도 세력이 대단한 게, 수도권 지역의 분구 과정 중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인천교구]]가 [[천주교 수원교구|수원교구]]보다 1년 먼저, 대한민국 로마가톨릭의 3관구 체제 성립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에서 분구가 되었다(1962). 물론 적임자 주교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지만, 목구 체제에서 교구 체제로 전환되면서 곧바로 분구가 된 것도 인천 가톨릭 교세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 ||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 특히 기독교 강세 지역이라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점이, 대한민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기독교 4대 종단([[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예배처]]가 한 곳에 있는 곳은 [[간석동]]이 유일하다.<ref>서울에도 있을법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작 정교회 서울대성당은 아현동에 있고, 그 동네에는 성공회 교회가 없다. 반면 여기는 가장 먼 가톨릭 간석4동본당(신학교도 딸려 있다!)과 성공회 간석교회의 본당간 직선거리가 900m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천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교회도 있으며, 구 경인선 부지 + 인천메트로 인입선 입구로 대표되는 [[인천 중앙공원|중앙공원]] 최북단에 [[중부연회|기감 중부연회]]가 웨슬리 희망동산이라는 공원을 세워두었다.</ref> | ||
이런 이유로 인천 본토는 거의 기독교인이 아니면 무교고, 가끔씩 불교인, 유교인을 만나는 수준이며, 심지어 조계종의 한 연구소는 남인천과 북인천을 '포교가 취약한 지역'으로 인정할 지경이다<ref>{{기사 인용|url=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3847|뉴스=불교포커스|저자=신혁진 기자|제목=경기택지개발 종교용지 온통 개신교‥불교는 ‘제로’|작성일자=2011-08-30|확인일자=2012-03-03}}</ref>. 심지어 개신교 쪽에서 이슬람교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면서 노력할 정도니 앞으로도 현재의 종교 지형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 |||
다만 인천지역의 개신교가 상당히 우파적인 만큼 다음세대가 지속적으로 빠져나가 무교인이나 가톨릭인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관계로 향후 20-30년 이후 인천 시민의 종교현황이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 |||
== 정치 == | == 정치 == | ||
남인천과 동인천 등 남부 본토, 특히 신도시 개발 이전의 지역들에서는 [[새누리당]]이 우세하고, 그에 비해 북인천과 서인천, 그리고 동구 일부, 남동구 일부 등 신도시 지역은 [[대한민국의 개혁·진보 정당|개혁·진보]]쪽이 우세하다. | 남인천과 동인천 등 남부 본토, 특히 신도시 개발 이전의 지역들에서는 [[새누리당]]이 우세하고, 그에 비해 북인천과 서인천, 그리고 동구 일부, 남동구 일부 등 신도시 지역은 [[대한민국의 개혁·진보 정당|개혁·진보]]쪽이 우세하다. | ||
== 교통 == | |||
=== 철도 === | |||
{{본문|경인선|인천 도시철도|수인선}} | |||
인천광역시는 대한민국 [[철도]]의 첫 시점이었던 [[경인선]]이 1899년 처음으로 개통된 지역이다. 그러나 경부선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원래 인천부터 노량진, 그리고 서울역을 잇는 하나의 본선으로 여겨졌던 경인선은 서울역-구로 구간을 경부선에 빼앗기고 구로에서 분기되는 지선으로 전락되었다. 이후 경인선은 [[1974년]] [[8월 15일]] 복선 전철화가 이루어진 이래, [[1991년]] [[1월]]([[부평역|부평]]-[[용산역|용산]] 구간)부터 [[2005년]] [[12월]]([[동인천역|동인천]]-[[주안|주안역]] 구간)까지 복복선화가 진행되었지만, 경인선 이외 인천과 서울간을 잇는 철도는 2007년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고, 이후 서울역 연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무하였다. 그나마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면서 청라권, 북인천권의 서울간 교통은 매우 개선되었으나, 아직까지 경인선을 제외하고 본토 인천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없는 실정이다. {{del|인천에 누군가가 [[사철]]을 뚫어준다면 본격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 분위기}} 하지만 [[2013년]] [[서울지하철 7호선|7호선]] 연장이 [[부평구청역]]까지 이어졌고, 이후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후 [[석남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 |||
한편 1995년을 기해 폐지된 [[수인선]]은 [[2012년]] 우선 [[송도역|송도]]-[[오이도역|오이도]]역 구간이 개통되며 재운용에 들어갔고, 이후 [[인천역]]까지 연장되었다. 또한 2016년 8월에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었는데, 좋은 전철인지 안 좋은 전철인지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철도가 되었다. | |||
=== 도로 === | |||
=== 버스 === | |||
== 주와 참고문헌 == | == 주와 참고문헌 == | ||
<references /> | <references /> |